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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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문화예술공간 및 문화정책의 핵심과제 : 예술경영마케팅[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문화예술경영: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동 문화예술기관과 문화예술활동의 현장에서 예술경영마케팅을 주요 과제로 삼은 것은 유럽 중심의 순수예술활동이 미국으로 이동하게 되는 1900년대 초 무렵이다. 그 이전에는 전통적인 유럽의 순수예술이 전 세계적으로 주류를 이루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심의 고급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이 뉴욕 중심의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공연예술과 서부 헐리우드 중심의 영화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상업적으로 대폭 성장 발전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파트너쉽을 통한 기업후원 중심의 예술경영 마케팅 분야가 중심에 있었다. 이후 예술이 사회학의 한 분야로 다뤄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문화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지고, 예술은 사회학, 경영학, 경제학의 측면에서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유럽과 미국 중심으로 예술경영학 분야가 대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 중후반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의 복합문화 공간과, 한예종, 단국대, 추계예술대, 성균관대, 경희대, 중앙대 등의 대학에서 정규 과목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2000년에 들어서며 예술경영학은 전국의 대학과 문화예술 공간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문화예술의 핵심과제가 기존의 전문예술가의 육성에서 문화예술 기획과 마케팅 중심의 예술경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보니타 M. 콜브 '문화예술기관의 마케팅'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1년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공연관람객이 ‘전년 대비 90% 이상 감소’했다는 응답이 46.8%였으며 ‘50% 이상 감소’한 비율이 86.7%로 나타났다. 또한, 매출액 감소는 ‘전년 대비 70~100% 감소’가 38.5%, ‘ 50~70% 미만 감소’가 23%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조사 통계는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즉시 나타나면서 코로나19로 인해 휴업이나 폐업을 한 경험률이 45.8%로 나타났고, 전국적으로도 음향, 조명, 악기, 장비 등의 관련 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보니타 M. 콜브(Bonita M. Kolb) 박사는 펜실베이니아 주 라이커밍 대학과 뉴욕의 프렛 연구소,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문화예술경영학과 마케팅 관련 연구를 하였다. 특히, 브루클린 미술관, 런던의 오케스트라, 위그모어홀 등 유명 문화예술 기관과 함께 문화예술마케팅 연구를 진행하였고 이러한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문화예술 및 예술경영의 스테디셀러인 '문화예술기관의 마케팅'을 집필하였다. 여기에는 기업의 후원을 받는 대신 세련된 취향을 가진 고소득 고객에게 기업 홍보 기회를 제공한 로열셰익스피어극단, 고객을 성별, 연령별, 구매 빈도별로 세분화하여 접근함으로써 예매 갱신율을 높인 포트워스오페라단, 목표 고객인 고학력 여성들이 많은 신용조합과 단체할인 계약을 맺은 올드글로브극단 등의 사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문화예술기관의 다양한 에술경영마케팅 또한, 세계의 클래식 팬들에게 잘 알려진 저렴한 입장료와 자유로운 분위기로 대중적 클래식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BBC 프롬나드콘서트, 온라인 가상 갤러리에 이용자 스스로 작품을 제작해서 올릴 수 있도록 한 미술관의 사례, 킹 목사의 생일에 음악회를 개최함으로써 흑인들을 클래식 음악의 소비자로 만든 사례 등 다양한 문화예술마케팅과 관객개발전략 등은 지금까지도 좋은 사례로 전해지고 있다. 코로나 블루로 위기에 처한 공연장, 미술관 등의 문화예술 공간과 예술단체 및 문화관광 축제에 기업후원을 통한 파트너쉽, 시민중심의 멤버쉽과 스폰서쉽, 틈새시장을 이용한 관객개발전략 등 문화예술기관과 문화예술 활동의 현장에서 다양한 예술경영마케팅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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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버ㆍ견ㆍ참 스피치 (나를 위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당신은 무엇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갖고자 하는 욕심이 충족되었을 때 ‘역시’를 외치며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 것이다. 반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실망과 좌절 속에서 한탄을 하곤 한다. 자학과 절망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 째,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自足)’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됐지 뭐.’ 너무 간단하고 뻔한 답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만 있으면 고인 물 즉, 정체된 삶이 될 수 있다. 지금 이대로의 나로만 만족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둘 째, 자신의 능력을 끝까지 의심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강한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음의 힘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까지도 재고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그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상상을 한다. 그러나 결국 상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후천적인 연습 과정으로 목표를 성취하거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고난 ‘끼’를 발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다소 무겁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끼’없는 실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 분야가 그러하다. 타고난 소질과 후천적인 노력이 더해지면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가..그들이 그러하다. 스피치도 마찬가지이다. 타고난 말발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이들이 있다. 감히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유감스럽게도 ‘말’은 타고난 ‘끼’ 보다는 후천적인 훈련의 대가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반전 결론이다. 물론 갖고 태어난 언어적인 재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언어는 출력하지 않으면 사장되고 만다. 오히려 그 재능은 퇴화한다. 언어가 갖는 특성이다. 우리는 쉽게 이루지 못하는 현실에 갈증을 느낀다. 원인은 무엇일까? 자신의 지금 위치를 확인하고 계발해 나가려는 정성이 부족한 건 아닐까? 주위를 살펴보면 해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힘이 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렵게만 생각하고 멀리서만 찾으려 하진 않는지..... 가장 가까이는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한다. 언어적인 자신의 ‘끼’는 있는가? 언어 구사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자신의 ‘끼’를 찾고, 찾아보니 ‘끼’가 없다면 후천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플랜 B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인체는 신비롭다. 자가 치료도 가능하다. 이처럼 내가 나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도 무한한 가능성이 담긴 내 안의 보물 상자를 열어보게 된다. 언제나 쉽게 누릴 수 있는 공기나 물처럼 그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갖고 있는 재능도 발견할 수 없고, 플랜 B도 세울 수 없게 된다. 언어적인 나의 능력은 그렇게 꾸준히 구축하는 것이다. 몰라서 꺼내지 못하는 것과 알아도 꺼내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 맹신도 문제일 수 있지만 알고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방치하는 것이다. 내면의 가능성을 끄집어 내어 외적으로 발산시키자. 나의 새로운 계발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온 것이다. 핑계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꾀만 부리는 여우와 다를 바 없다. 다음과 같다.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어. 딸 필요가 없어!’ 그럴싸한 핑계가 유성처럼 쏟아진다. ‘이 나이에 뭘’, ‘내가 뭐라고’, ‘내 주제에’... 무엇을 시작하는 데에 때는 없는 법이고, 시간도 만들기에 따라서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릴 수도 있다. 자신의 짐작과 어설픈 지식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맹신 습관도 버리고, 무엇이든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꼼꼼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경험을 떠올려 재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경험을 완벽한 무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달에 가보지도 않고 방아 찧는 토끼를 보았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자신의 추측일 뿐 진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실패든 성공이든 효용가치를 높여야 한다. 오해와 편견에서 탈출해야 한다. 한 번 실수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 즉,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다소 쓰긴 하지만 실패처럼 좋은 약도 없다. 실패의 이유를 찾아 분석한 뒤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재도전해야 한다. 기회는 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나서는 것이다. 나의 꿈이 현실이 되는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버티고, 견디고, 참아야’ 한다. ‘버ㆍ견ㆍ참’을 기억하자!!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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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국가의 예술 정책[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코로나에 이어 또 다른 된서리를 맞게 된 2021년 축제들 주로 연극분야의 축제들이 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올해 지원사업 공모에서 오래도록 꾸준하게 지원을 받아 성장해온 지속성과 정통성을 만들어 가고 있던 축제들이 올해 지원사업 공모에서 대거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각 단체들과 축제 조직위는 성명을 내고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래 사진은 지난 6월 21일 ‘예술창작정책살리기비상회의’가 발표한 공동성명서이다. 이 문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의 방침으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예술계의 반응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임명에 대한 부당성까지 언급되는 수준이다. 그러면 왜 기획재정부에서 축제에 대한 선별을 이야기 하게 되었는가가 더 궁금해진다. 각 단체들과 축제들이 지원사업에서 대거 탈락한 이유 첫 번째는 지원 예산의 삭감이다. 지속성과 정통성을 선심성, 소비성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여기에 선심성과 소비성이 기준이 되는 이유는 집객과 행사의 수혜를 근거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집객 수준이 적고 수혜를 받는 대상은 각 단체들과 축제 관련자들로 한정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몰이해에서 시작된 시각이 실제로 척박하고 열악한 현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문제가 그대로 반영이 된 결과이다. 두 번째 문제는 3년 이상 된 축제의 지원이 불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공연예술축제, 특히 연극축제의 경우 지속성을 갖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시각은 공연 예술이 갖는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축제의 지속성은 그 예술 장르의 1년 단위 예술적 성과를 한자리에서 확인 할 수 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지속성으로 만들어진 정통성은 안정적인 예술가의 저변확대와 배출 및 새로운 창작의 중요한 출구가 되고 작품들이 서로 비교되어 작품의 완성도를 지속적으로 향상 시킬 수 있는 축제만이 갖는 장점을 무시한 결과이다. 여기에 추가로 기획재정부의 방침으로 앞으로 매년 10%의 예산 삭감이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상황이다. 예술이라는 분야에 성과주의를 대입시켜 판매의 결과인 매출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거의 모든 예술은 창작보다 유행, 판매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유행이 지속되면 예술이 갖고 있어야 하는 다양성과 독창성은 점점 사라지며 획일적인 사회가 되고 만다. 정부의 기관이 지원사업을 실행하면서 사업 성과의 잣대를 집객이나 효과의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기획재정부의 시각에서는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20년 30년 동안 전 예술 분야 중 가장 척박하다는 환경에서 축제를 지속 시켜오던 사람들에게는 코로나보다 더 가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더 크게 느껴진다. 기획재정부의 시각이 반영되었던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현재 어떤 결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정부에서는 다시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획재정부의 주요 업무라는 정책 기획과 부처간의 조율이 힘없고 전문성 없다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게는 갑의 명령으로 바뀌게 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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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캄보디아에서 태권도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전문가 컬럼=힌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내세울 것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하면 기억해 주는 것이 한국전쟁, 태권도, 김치 이 정도였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전쟁이야 우리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이고 그 폐허를 딛고 오늘날의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니 굳이 감출일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며 그런 어려운 역사를 이겨냈음은 당연히 자랑스러워할 일 중 으뜸일 것이다. 김치는 얼마 전 중국이 한복과 더불어 자기들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넋 나간 소리를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나보다. 태권도 역시 전 세계 어디서든 모르는 이가 없고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로 우리의 메달밭이 되었으며 태권도가 보급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유명세가 오래 유지되었다. 세계인들은 우리 조상들이 소중하게 여기며 간직했던 ‘인,의,예,지’를 바탕으로 한 정의, 예절, 사회성 등의 여러 태권도 정신에 매료되었고 단순한 체력 단련으로 건강을 다지기 위함을 벗어나 앞에서 언급한 태권도 정신을 배우고자 오늘도 수많은 세계인들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태권도는 아주 특별한 대접과 인식을 갖고 있는 스포츠이며 국가 역사에 한 획을 장식한 특별한 사건이 있는 스포츠이다. 캄보디아는 한 때 우리 보다 잘 사는 나라였고 한국전쟁 때는 우리에게 식량을 원조해 줄 정도였다. 그러나 많은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와 내전, 특히 ‘킬링필드’로 불리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의 내전을 겪으며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잘 살아보겠다고 국가 부흥을 위해 전 국민이 노력하고 있지만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통쾌하고 기분 좋은 국가적 경사스러운 일들은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때 벌어졌으니 그것은 캄보디아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태권도에서 획득하게 된다. 온 나라가 열광하였고 국민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며 그 때의 흥분은 지금도 태권도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 일은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꿈과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우리에게는 올림픽도 아니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인데 뭘 그렇게 까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캄보디아는 그 때까지만 해도 올림픽은 고사하고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이라는 목표는 말 그대로 넘사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냥 포기로 삶을 살아 온 캄보디아인들에게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흥분의 도가니로 빠질 정도의 사건이었다. 주인공은 당시 12학년(고교 3학년)생이었던 여학생 ‘손 시브메이(Sorn Seavmey)’ 선수였다. 우리에게는 전 세계 어느 곳이던 실시간 방송이 보편화 되어있지만 그 때만 해도 캄보디아는 방송 인프라가 부족하여 많은 국민들은 캄보디아 대중 매체나 다름없는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등을 활용하여 전국 각지로 소식을 전했으며 전국은 흥분과 열광에 빠졌다. 금메달 획득 소식이 전해지고 순식간에 전국 주요 도시에는 금메달 획득을 축하는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고 우리 한국인들도 주 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을 비롯하여 캄보디아 거주 한인 단체, 나아가서 많은 교민들이 개인적으로 내건 축하 현수막까지 수도 프놈펜 곳곳에 걸리게 될 정도로 현지인들과 축하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한 밤중임에도 불구하고(한국에서 캄보디아 도착 항공기는 늦은 시간에 도착한다) 정부 고위 관료들은 공항에서 직접 ‘손 시브메이’ 선수를 맞이했으며 프놈펜 국제공항은 수많은 환영 인파와 언론사들의 취재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또한, 정부는 프놈펜 국제공항에서부터 프놈펜 시내까지 선수와 코치진들에게 카퍼레이들 시켜 주었고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환영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리고 ‘훈센’ 캄보디아 수상은 관저에서 잠을 마다 않고 ‘손 시브메이’선수를 기다렸다가 영접하였으며 선수와 코치진의 노고를 크게 치하했다. 이 때 캄보디아 정부는 ‘손 시브메이’선수에게 금메달 공식 포상금 2만 달러와 훈센 총리의 특별 포상금 1만 달라를 수여하였으며 대학교 특별 입학 자격과 연간 1500달러의 장학금까지 지급하게 된다. 이외에도 훈센 수상이 아파트를 하사하였으며 여러 가지 선물도 많이 받게 되었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 후에 ‘손 시브메이’ 선수는 빼어난 미모 덕분에 온갖 광고 모델을 요청 받아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되는 신데델라가 되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이 나라에서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1976년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첫 금메달을 땄을 때 전국이 열광에 빠졌던 때를 기억하면 이 당시 캄보디아인들의 기쁨을 어느 정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캄보디아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1996년부터 캄보디아 대표팀을 지도하는 최용석 감독은 이때부터 국가 영웅 대접을 받게 되고 태권도의 인기는 캄보디아 전국을 뒤 흔들며 그 인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어느 한 나라가 이렇듯 전 국민이 열광하고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되는 사건에 우리의 것, 자랑스러운 태권도가 있으니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태권도는 언제나 그렇고 어디에서도 그렇고 누구에게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소중한 우리의 것이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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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허가와 인가의 비교[전문가 컬럼] 김경화 기자= 알아야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말 그대로 어떠한 사실에 대해 일반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산다는 내용으로 육군의 화학학교는 이 말을 슬로건을 삼을 정도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허가를 받아야한다’, ‘인가를 받아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고, 많이 사용하는데 정말로 허가와 인가의 차이를 알고 사용하는지 의문이 들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때 허가라는 말이 적합하며, 어느 때 인가라는 말이 적합한지 알고 사용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허가와 인가를 적용하는 공무원 조차도 인가사항에 대해서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혼잡스럽게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하나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은 허가와 인가의 비교하여 볼 예정입니다. 시행법령에서는 허가와 인가의 기준비교는 명확하게 구분하여 규정되지는 않지만 국회의 법령입안심사기준서에서 허가와 인가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허가란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특정한 경우에 특정인에 대해 해제하는 행정처분으로 정의되며 즉, 법률적으로 그와 관련된 행위를 모든 자에게 금하는데,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하여 금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부적으로 대인적 허가와 대물적 허가로 구분을 하지만, 통상 건축허가, 영업허가로 구분하시면 됩니다. 인가란 타인의 법률행위를 완성시키는 보충행위 라고 정의되며, 즉 누구든지 요건을 성립시키면 할 수 있는 행위로 법인의 설립 허가 등이 포함됩니다. 허가 및 인가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실로 누구든지 요건만 갖추면 할 수 있음에도 ‘재량권’을 빌미로 하여 민원인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승인과 특허(면허), 등록, 신고 등의 개념은 있으나, 실제 면허와 등록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법률적으로 효력 부여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허가와 인가사항을 위반할 경우 어떠한 제재조치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아셔야 향후 발생될 문제점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가사항을 위반할 경우는 두가지의 처벌과 처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허가 사항에 대한 불법으로 인해 형사처벌과 불법 행위 장소 등에 대한 영업정지 또는 폐쇄처분이 동시에 발생될 수 있으며, 허가란 기속력이 강해 위반할 경우 가중처벌이 발생될 수 있으니 이러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가사항을 위반할 경우 단지 그 성립된 행위에 대한 무효처리만 있을 뿐이지 강제적인 처벌이 수반되지 않습니다. 이렇 듯 우리가 그동안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좀 더 파악이 된다면 다음에 이러한 행위를 할 경우 도움을 줄 수 도 있다는 판단에 작성된 글이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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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손암 정약전② 나무를 깎아 지구본을 만든 정약전[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손암 정약전은 아버지 정재원 슬하에서 학문을 닦다가 1776년(영조 52년)에 아버지가 호조좌랑이 되어 서울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녹암 권철신을 통해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고 그의 문파를 계승하였다. 그 후 이익의 제자 이벽으로부터 서학(西學)을 알게 되어 큰 감명을 받아 1783년 가을 (정조 7년,26세)에 진사가 되었지만 대과(大科) 공부를 등한히 한 채 서학에 심취하였다. 그러나 처음에 열중한 것은 천주학만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에 주로 마음을 기울인 것은 서학 가운데에서도 과학에 관한 것이었다. 서양의 과학이 중국에 전래 된 것은 16세기 중반 이후에 중국으로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들, 특히 마태오 리치(1552-1610,이탈리아) 신부 일행이 북경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때였다. 중국을 거쳐 조선의 사신들을 통해서 조선에 도입된 서학과 과학은 여러 분야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특히 천문학에 대한 관심에 큰 변화가 있었다. 당시의 조선 천문학의 상황은 세종 이후로 자연현상에 대한 꾸준한 기록과 나름대로의 지속적인 연구로 천문에 대한 성과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양의 발달된 수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 같은 비과학적인 인식이 변화된 것은 서양 과학으로 인한 중요한 영향이었다. 옛 사람들은 서양 선교사들의 해석을 수긍하기 전까지 하늘은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둥글고 별들은 모두 그 둥근 하늘에 붙어 있다고 믿었다. 지구 자체가 둥글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땅은 모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멀리 나가면 끝나는 곳이 있고, 결국은 낭떠러지 같은 곳으로 떨어질 거라고 믿었던 것이 바로 ‘천원지방’이라고 하는 개념이었다. 고대 중국의 천문학 문헌인 ‘주비산경(周髀算經)’에 수록된 이 이론은 전근대 말까지 동아시아에서 하늘과 땅의 모양에 관한 권위 있는 주장이었다. 1721년(경종1년)에 유척기(1691~1767)가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채색으로 필사한 세계지도 곤여전도(坤輿全圖)를 구해 왔다. 이 필사본 원본은 선교사 페르비스트(1632~1688)가 선교의 목적으로 1674년에 북경에서 목판에 새긴 한자 세계지도이다. 곤여전도는 원본이 목판본이었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어 현재 상당수가 전해지고 있다. 지도와 도설이 같이 수록되어 선박과 동물의 그림까지 들어있다. 지구를 두 개의 반구도로 그려서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지도가 도입되자 그때까지 중국 중심으로 사고했던 조선 식자들의 세계관이 크게 변하고, 실체에 가까운 조선지도 제작을 시도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배 중에 주고받은 편지 중에는 성호 이익의 학문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 구설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던 두 사람이, 둥근 지구에 맞는 지도제작의 어려움과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눈 내용이 있다. 1811년에서 1812년 사이에 오고 간 서신이다. * 무릇 지도를 제작하는 방법은 언제나 지지(地志)의 축척법을 준수해야 하니 지구가 둥글다는 올바른 이치를 모르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분명치 못하게 되어 결국은 어떻게 할 수 없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경위선을 곤여도처럼 만든다면 매우 좋습니다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천리를 그릴 때마다 그 사각형의 공간을 확정하고는 먼저 지지를 검토하여 4개의 직선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의 축척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 1811년 경 유배 중에 다산이 형 손암에게 보낸 편지 (다산서간정선, 정혜렴 역주) 중에서 * 다산은 손암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도를 만들 때는 반드시 지리서의 축척법을 지켜서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록 지리서를 따랐다 하더라도 끝내 지도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를 당할 때마다 반드시 지리서는 믿을 수 없다고 탓하게 되는데 이는 첫머리부터 역시 이 주의할 점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지구가 둥글다는 올바른 이치를 깨달은 뒤에라야 비로소 지도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암은 이에 답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지도의 종횡과 층가(層架)는 스스로 정예하고 오묘하니, 지지(地志)에 실린 것에서 만일 한곳의 북극이 나온 땅을 안다면 이로써 미루어 사방 경위선을 만들 수 있는데 성경(盛京)의 북극을 또한 알 수 없으랴. 무릇 경도. 위도의 법에 위도의 선은 지극히 쉬우나 경도의 선은 가장 어렵다네. 대개 극으로부터 적도에 이르러 점차 커가는 형세는 판단해 정하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집에 있을 적에 나무를 깎아 지구의 모형을 만들어 경위선을 그어 곤여도에 옮겨서 가운데를 잘라서 적도를 만들어 요점만 살피는데 편리하게 하려다가 뜻만 있었고 이루지를 못했다네. - 1812년 경 유배 중에 손암 정약전이 동생 다산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 (같은 책) 중에서 * 손암은 아우 다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유배 오기 전에 집에 있을 때 나무로 지구 모형인 지구본을 만들었던 얘기를 했다. 북극의 위치만 알면 그것을 기준으로 지리서에 사방의 경위선을 그려 넣을 수 있는데, 지도를 제작할 때 위선을 그리는 것은 적도를 영도로 해서 위 아래로 나누어 나가므로 아주 쉽지만, 지구를 세로선으로 구분하는 경선을 그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고 적었다. 경도를 그리려면 적도를 중심으로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경도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므로 이 경선을 그리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 지도 제작의 어려움을 해소해 보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던 끝에 나무를 깎아서 지구의 모형을 만들어서 거기다가 경위선을 그어서 곤여도를 그려 넣은 다음에 그것으로 지도를 만들 때 편의를 도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두 형제가 유배지에서 남긴 서간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기구한 삶을 살면서도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자적 노력을 아끼지 않은 훌륭한 인간적 열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소중한 흔적이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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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격조 높은 몸의 대화와 춤의 이야기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생활속에 들어온 격조 높은 발레공연 지난 6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희극발레의 대표적 작품인 '돈키호테' 발레공연이 있었다. 국립발레단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작품으로 2017년 이후 4년 만에 오른 작품이었다. 세련되면서도 편한 문훈숙 단장의 인사말은 공연전 긴장된 극장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었고, 작품의 해설과 함께 몸소 선보인 춤동작과 공연의 주요 장면들의 발레동작은 공연이 시작전임에도 관객의 환호성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데스의 소설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원작으로 제작된 희극 발레 돈키호테는 1869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볼쇼이발레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세계 초연 이후 가장 유쾌한 발레로 손꼽히면서 사랑과 우정, 모험과 판타지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스페인의 정취가 가득한 민속춤과 고난도 테크닉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고 주역 무용수인 홍향기와 이동탁, 손유희와 이현준의 춤은 이 무대를 빛냈다. 특히 발레 돈키호테에서 빠질수 없는 3막에서의 그랑파드뒈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청년예술가 라이징스타 육성도 빛났던 공연 정식 발레 공연에서는 필수인 오케스트라는 김광현의 지휘로 쿱스오케스트라가 담당하였고, 현악과 관악의 밸런스와 개별 연주자들의 수준높은 연주 또한 최근 보기 힘든 훌륭한 연주로 발레단과의 앙상블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연주였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는 훌륭한 주역 무용수들의 무대도 좋았지만 예술고에 재학중인 학생을 비중있게 출연시킨 점은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예술에 대한 철학과 차세대 예술가를 육성하고자하는 의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로 보였다. 이전에도 발레단에서는“2010년 ‘라 바야데르’ 공연 당시 대학생이었던 박세은(현 파리오페라발레 수석무용수), 김기민(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객원 주역으로 과감히 기용하기도 하여 호평을 받은바 있었다. 위드코로나, 예술단체 후원을 통한 다양한 문화정책 필요 발레공연은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어야하고 대규모의 무용수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만들어가는 종합예술로 민간단체에서 단독적으로 작업하기에는 쉽지 않는 작업이다. 마침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어려워진 예술계를 위한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치고 있고, 우리나라 복합문화 공간의 대표젹인 예술의전당(유인택 사장)에서도 예술기부 캠페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번 공연은 유니버설발레단과 예술의전당의 공동작업으로 제작된 작품이라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공연장에 꽉차있는 관객과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예술가들을 보면서 좋은 예술이야말로 코로나 블루로 지쳐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다시한번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다양한 예술지원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예술의전당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좋은 공연을 선물해 준 유니버설발레단과 보이지 않는 무대 아래에서 좋은 앙상블을 보여준 지휘자와 쿱스오케스트라에 경의를 표한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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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미스코리아 스피치, 준비된 자만이 설 수 있다[전문가 컬럼] 김경화 기자= 1957년부터 시작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약 6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무대 위에서의 3분 자기소개를 위해 미스코리아 후보자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나는 반복을 하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지난 2017년도부터 전라북도의 한 언론사를 통해 ‘미스코리아 전북대회’와 인연을 맺었다. 대회 운영위원으로서 기획, 연출, 무대매너 및 스피치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후보자들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다. 미인대회 자체가 한때 여성의 상품성 논란으로 시끄럽기도 하였지만 그건 단편적인 부분이다. 과거 필자 역시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니 세상을 보다 좋은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지역 본선 대회 MC로도 무대에 섰는데 무대에서 직접 마주하니 후보자들의 긴장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자신감에 넘쳐 전혀 떨지 않을 거란 생각이 비껴갔다. ‘저들은 왜 대회에 나왔을까?’ 생뚱맞을 수 있지만 당시 마음속으로 자문자답했던 기억도 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삶!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구나...’ 모두가 쉬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결코 쉽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 아무리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겨도 ‘용기와 도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발견은 견줄 수 없는 미(美)의 향연에서도 그 사람의 말솜씨가 더욱 깊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두어 번 겪으니 주변 젊은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그 어떤 무대도 도전하는 자’와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본인만 모른 채 ’그 어떤 도전도 하지 않는 자‘로 말이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외모인데 정작 본인만 모르는 것 같았다. 다방면으로 한창 꿈만 꿔도 좋을 나이! 그 젊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소개했고 무대로 이끌었다. 물론 그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대게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미인대회는 요즘 말로 ’넘사벽‘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벽을 허물었고 그렇게 도전은 시작되었으며 그 시작이 ’2020년 미스코리아 진(眞)‘의 왕관을 쓰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렇다. 필자는 주변에서 인물을 발굴하였고 철저히 준비시켜 미스코리아 전북대회 무대에 올렸고 ‘전북 진(眞)’으로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전국 대회 무대에서 기량을 십분 발휘하며 미스전북 역사를 새로 쓰게 된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그저 찾아온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외치고 싶다. ‘왕관을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준비하라! 준비된 자에게 왕관은 돌아간다.’ 미스코리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것은 아니다. ‘美’를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한정된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기준이 있을 것이며 국민들의 참여도 역시 100%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후보자들 중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극소수인 ‘진.선.미‘가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겸손의 미덕’이 필요한 법! ‘당찬 겸손’을 생각해 본다. 후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성찰(自己省察)이라 하겠다. 타고난 ‘美’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美’는 나를 통해서 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상호적으로 세상을 읽는 눈이 구축되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이다. 타고난 미(美)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아름답게 가꾸는 진정한 미(美)를 추구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누구나 무대 위에서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되기도 하고, 설렘이 되어 한껏 즐기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스피치도 마찬가지이다. 남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스피치도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고 꾸준한 반복 훈련으로 준비를 완성해야 한다. ‘고통’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그건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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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2021년 대중음악 음원제작 지원사업[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사)한국음향예술인협회에서 진행하는 올해로 3번째로 시행하는 지원사업 공지가 올라왔다. 먼저 알아야 되는 마감일은 2021년 6월 28일이다. (사)한국음향예술인협회는 1999년 설립된 음향ㆍ음악 제작에 관련된 전문 예술인들의 모임으로 녹음ㆍ믹싱ㆍ마스터링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다. 그리고 2019년부터 민간단체가 진행하는 지원사업으로 대중음악 아티스트를 선정해서 음악 제작의 전반을 진행하고 최종 음원까지 제작ㆍ유통까지 해 주는 사업이다.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엔 수많은 예술적ㆍ기술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소리를 듣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인 요소가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적 안정성은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협회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음향엔지니어, 음향기사로 불리던 사람들이 ‘예술인’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된 이유는 음악에서 기술적인 요소보다 음악적 예술성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협회의 공식 명칭에 예술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국내 저작권과 관련 어디에서도 음향적ㆍ창작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이런 지원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는 점이다. 저작권은 음악 창작에 관한 권리이고 저작인접권은 완성된 음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녹음ㆍ믹싱ㆍ마스터링 작업이 창작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비용이 발생하는 전체(녹음ㆍ믹싱ㆍ마스터링ㆍ녹음실 사용료 등등)를 지원하고 저작인접권을 얻는 방향으로 지원사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진행하는 사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각종 정부에서 진행하는 지원사업 중에서 대중음악은 언제나 소외 되어 왔다. 지금도 소외 되고 있다. 대중적인 판매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음악은 지원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중음악이 K-POP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니 정부에서는 오히려 국가적인 성과로 생각하는 모습이어서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아이돌 댄스 음악이 우리나라의 모든 대중음악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도 너무 아쉬운 상황이다. 인기를 얻은 음악만이 전체가 아니고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고 있는 음악 산업 내에서 (사)음향예술인협회의 이런 형태의 지원 사업은 민간단체가 보완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지원사업으로 제작된 음악이 더 많이 알려져 인기를 얻게 되는 상황이 가장 좋은 그림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먼저 꼭 알아야 되는 것이 있다. 협회에서 지원사업으로 만든 음원이 한국 음향 산업의 현재를 반영한 기술력과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 지원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음악과 음향기술의 현재를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리고 이 나라의 음악ㆍ음향산업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지속성이 꼭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지원하는 아티스트와 진행하는 음향예술인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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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캄보디아 금융 산업 발전에 한국계 은행들이 있다.[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한 국가의 경쟁력을 평가할 때 기본적으로 거시경제 안정성과 여러 정책적인 제도, 사회 인프라와 교육, 노동, 기업환경의 성숙도등 여러 가지 요인을 살펴본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금융 시장의 효율성이다. 캄보디아의 국가경쟁력은 106위이다. (2020년 기준) 아직 하위권의 국가임에 틀림없지만 금융 시장은 의외로 후진국답지 않게 제법 편리하게 구축되어 있다. 아직 한국의 금융 서비스에 비할 수 없고 선진 금융 시스템을 갖추기 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은행의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발전 하였으며 그 중심에 한국계 은행들이 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필자가 이곳에 부임한 2011년만 해도 한국에서 송금을 하게 되면 이 곳 계좌에 입금되기까지 보통 2주는 기다려야 했다. 자칫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보통 낭패가 아니었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일찌감치 송금을 하면 어느 땐 당일 오후에 입금되거나 아니면 늦어도 2~3일 후에는 입금이 된다. 게다가 휴대폰 앱을 통해서 간단히 입금 확인을 할 수 있어 예전처럼 은행에 나가서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앞에서 얘기한대로 한국의 금융 서비스 기법에 비교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있지만 단순한 입·출금이나 송금 그리고 소액 결재시스템 등의 개인 금융 업무를 주로 하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캄보디아 대부분의 은행들은 폰뱅킹 시스템이나 소액 결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다양한 부가 기능까지 휴대폰 앱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해진 것이 아니다. 캄보디아에는 한국의 주요 은행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간단히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자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JB전북은행, IBK기업은행, DGB대구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이 있다. 이들 은행들은 단순히 이곳에 지점을 개설한 것이 아니고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정식 상업은행(한국의 시중은행) 허가를 받은 현지 은행이다. 이밖에도 일일이 열거하지 않은 특수은행(한국의 제2금융권)과 MFI(소액대출은행)까지 진출한 은행들을 더하면 한국계 금융 기관이 캄보디아 금융시장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캄보디아에 진출하면서 한국의 선진 금융 기법이나 전산 시스템을 옮겨와 이 나라에 맞게 구축하였으니 금융 서비스의 질이 향상됨은 물론이고 소비자 편리성까지 크게 높아졌다. 이제는 수도 프놈펜은 물론이고 지방 도시까지 이들 한국계 은행들의 지점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일부 은행들은 한국인에 대한 영업 강화를 위해 한국인 또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캄보디아인을 전담 직원으로 배치하고 있다. 필자가 만나본 한국계 은행 직원의 말에 의하면 캄보디아는 은행의 예대 마진이 한국에 비해 높고 인건비나 마케팅 등 영업비용이 높지 않아서 매력적인 금융 시장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1~2%대의 저금리 자금을 들여와서 6~20%대의 고금리 대출을 하고 있으니 정말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신용대출은 거의 없고 대출은 대부분 담보 설정 대출이다 보니 채권 미회수에 따른 위험 부담도 한국에 비해서 현저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에는 약 40여개의 상업은행(일반 시중은행), 약 15개의 특수은행(주로 대출을 담당하는 제2금융권), 약 80여개의 MFI(소액대출은행)가 있는 그야말로 금융업 춘추전국시대의 나라이다. 이 중 한국계 은행들이 18개가 있으며 대부분이 이 나라 금융업의 중심에 있으니 캄보디아 금융 산업 부분에서도 한국계 은행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은행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경제력 신장이 실감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들여 온 자금으로 돈 많이 벌어서 가난한 캄보디아인을 돕고 나아가 이곳에 진출한 한인 기업들이나 교민들도 지원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