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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언택트 (un-tact) 스피치[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이젠 사람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아니 어려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 얼굴을 본다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하고 심지어는 두렵기까지 하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나 20세기 초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홍콩독감을 비롯해 지난 2009년 신종플루에서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까지.. 사실 이러한 감염병의 세계적인 대 확산 이른바 ‘펜데믹’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의 펜데믹 현상은 전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놓고 있다. 좋은 말로 진화의 거듭이다. 야외 생활에서 실내 생활로, 단체 활동에서 개인 활동으로, 대규모에서 소규모로 생활 영역이 점점 축소되면서 사회 질서 또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면이 불가능한 상황이 많아지면서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환경이 제법 익숙해진 요즘이다. 공연, 강의, 축제, 행사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가 이젠 화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직장인들의 근무도 회사가 아닌 집에서 하는 재택 근무로 이어지면서 화상 회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른바 온라인으로 만나는 온택트(on-tact) 시대도 열린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스피치’ 역시 최근 들어 비 대면으로 더 많이 이루어질 뿐 여전히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스피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소통이 예전만큼 원활하지 않아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예전에는 잘 들리지 않아 두어 번 되묻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두어 번으로 끝나지 않는 상황이 많다 보니 들리는 것만 듣게 되고 들리지 않는 것은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따라 소통 보다는 불통의 상황이 증가하여 서로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언택트 스피치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 우선 목소리의 크기가 커야 한다. 다소 의아할 것이다. 현대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시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시대인 ‘마스크 시대’가 찾아오면서 목소리의 크기를 다시 크게 할 필요가 있다. 마스크라는 장애물이 큰 목소리도 작게 만들고 작은 목소리는 아예 음소거로 만들고 있다. 아무리 발음이 좋아도 들리지 않으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들려야 남고 남아야 기억되는 것이다. 과거 80ㆍ90년대만 하더라도 큰 목소리를 강조하며 연사가 두 팔 벌려 외치는 웅변 대회가 성행하며 웅변 학원이 인기를 끌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던 시대였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마스크 장벽이 생겼으니 남는 말이 되기 위해 목소리도 예전 대비 최소 30%는 볼륨을 키우자. 다음은 사람의 눈을 주목해야 한다. 시각적인 요소의 중요도도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포(before) 코로나 시대에는 스피커의 능력 중 얼굴 표정을 많이 강조했다면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하는 애프터(after) 코로나 시대에는 얼굴에서 보이는 게 눈 뿐이라 눈빛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마치 눈빛 연기를 하는 연기자처럼 눈도 함께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눈으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는 아니 더 나아가 영향력 있는 스피커가 되기 위해서는 눈빛으로도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스피치의 최종 목적은 ‘설득’이다. 예전의 스피치는 대중연설 속 설득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한 미디어 연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대중을 설득하고 있다. 단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을 선호한다는 것이지 결국 스피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비대면 시대가 도래 하면서 ‘Un-contact’가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비대면 접촉을 뜻하는 ‘언택트’라는 신조어가 익숙해진지도 오래다. 대면 방식의 만남 횟수가 감소한 것이지 만남 자체가, 더 쉽게 말해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통의 방법이 달라졌을 뿐. 어쩌면 우리는 온라인에서 더 많고 다양한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대적 조건이나 상황에 맞는 대안을 본능적으로 찾고 있다. 스피치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대면일 때는 청각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 모두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비대면이 주를 이루는 지금 시대에는 청각적 요소가 더욱 부각되고 시각적 요소 중에서는 얼굴 표정 중에서도 눈빛이나 손짓 그리고 자세가 더욱 더 중요시되고 있다. 가히 ‘마스크 혁명’이라고도 할 만 하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화상으로의 만남으로라도 끊임없이 교류하는 인간에게 얼굴 표정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콘텐츠와 표정이 일치할 때 그 사람의 말은 배가 되기 때문이다. 멋진 스피커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목소리의 볼륨을 높이고 표정은 물론 눈빛으로도 말을 하라!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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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캄보디아와 남ㆍ북한 외교 관계[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필자가 캄보디아에 부임한 2011년 만하여도 나의 지인들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건넨 걱정의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그들이 염려하는 말은 주로 캄보디아는 사회주의 국가, 가난한 나라, 북한과 형제 국가, 킬링필드 등 부정적인 표현들이었다. 사실 이 말들은 대부분 맞는 얘기지만 일부는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있다. 아마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는 독자 분들이 계실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캄보디아와 남ㆍ북한의 관계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먼저, 캄보디아는 사회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선왕인 시하누크 국왕에 이어 현재는 시하모니 국왕이 국가 원수이고 실질적인 국가 권력은 내각 수반인 훈센 총리에게 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그 유명한 인류 근대사의 큰 비극인 사회주의자 폴 포트에 의한 ‘킬링필드’로 불리는 대사건이 일어난다. 이때 약 200여만 명이 희생되었던 일로 인해서 캄보디아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나보다. 캄보디아는 남ㆍ북한과 동시 수교한 국가 중 하나이다. 한국이 191 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고 북한은 160개국과 수교하고 있는데 그 중 157개 국가가 남ㆍ북한과 동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다(2021년 4월 현재). 지금이야 대부분의 나라가 친한 정책을 유지할 정도로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중심으로 한 국격 상승이 이루어졌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친 북한 노선을 유지한 나라들이 많았다. 그 당시, 한국에 비해서 북한과 절대적 우호 관계를 맺었던 국가들로는 중국, 러시아, 쿠바 그리고 동유럽 일부 국가들과 아프리카, 중동의 제 3세계 국가가 있었는데 이 나라 중 일부는 북한과 형제애를 나눌 정도로 특별하고 돈독한 우의를 가졌으니 그 중 하나가 캄보디아다. 캄보디아는 한국과 1997년 수교를 맺었지만 북한과는 1964년 4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한국은 캄보디아와 1962년 영사관계를 수립하여 총영사관을 설치하였으나, 1966년 주 캄보디아 일본대사관에 북한의 김귀하 복싱선수가 망명을 요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한국 정부는 이 선수의 망명이 한국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나 외교 관계가 수립되지 않은 양국 관계와 일본 정부의 망명에 대한 부정적 대응으로 결국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의 요청을 무시하고 북한 선수를 북한으로 강제 송환해 버렸다. 한국 정부는 비 인도주의적 캄보디아 정부의 행태에 대한 항의로 1967년 1월 주 캄보디아 한국 총영사관을 폐쇄하였다. 그렇게 양국은 30년을 외교 공백으로 지내다 1996년 대표부 설치 후 1997년 비로서 대사관을 설치하면서 국교를 수립하게 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양국의 외교 관계가 복원되는 '재수교'라고 말하는데 이는 영사 관계와 국교 수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북한은 우리나라보다 무려 33년이나 먼저 캄보디아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니 그둘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캄보디아가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다. 당시 훈센 총리는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 전략을 위해 한국과 외교관계 수립을 추진하였는데 당시 시하누크 국왕은 한국과 1996년 대표부 설치 때부터 국교 수립을 강하게 반대했고 그 반대는 이듬해인 1979년에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 이어졌다. 시하누크 국왕의 이런 반대에는 시하누크 국왕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형제의 연을 맺을 정도로 관계가 특별한 것에 그 이유가 있다. 1970년 친미 주의자인 론놀 정부가 쿠테타로 시하누크 국왕의 정권을 무너뜨리자 시하누크 국왕은 해외로 망명하였고 이때 중국(마오쩌둥)과 북한(김일성 주석)이 그를 극진히 맞아 주었으며 특히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그와 형제의 연을 맺기까지 하였다. 중국과 북한이 캄보디아와 얼마나 가까운 관계를 맺어왔는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중심 상업지역에 가면 ‘마오쩌둥 대로(毛澤東 大路)’가 있고 또 다른 중심가인 뚤꼭 지역에 가면 ‘김일성 대원수 거리’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캄보디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고 시하누크 국왕이 왜 그렇게 한국과의 수교를 반대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또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초청 국가의 원수인 시하모니 국왕이(2004년 즉위, 시하누크 국왕의 아들) 북한을 의식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해외로 출국해 버리는 초유의 외교적 결례가 있었다. 그래서 국빈 만찬의 주인 역할을 캄보디아 상원의장이 대신한 일이 벌어졌으며 이후로도 계속된 캄보디아 왕실의 반한 감정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아무튼 캄보디아 왕실의 반한 감정이 절정에 달한 이 사건(?)은 외교적으로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외교적 어려움을 잘 극복하였고 지금은 캄보디아가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북한보다는 한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캄보디아는 한국과 교역량이 2001년 1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지금은 총 교역규모가 352억 달러에 이르고 있고 FTA 협정까지 맺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신 남방정책의 중심에 있는 국가가 되었다. 반면에, 북한과의 관계는 과거 형제 국가인 전통 우방국에서 지금은 캄보디아가 UN의 대북제재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있을 정도로 양국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야말로 일반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으로 양국 관계가 추락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캄보디아는 확실히 험난한 역사를 거쳐 왔다. 한때 인도차이나 반도 대부분을 지배했던 ‘앙코르 제국’의 영화를 재현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국민들이 국가 발전에 매달리고 있다. 또한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나라이다. 그리고 한국이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자 하는 메콩강 유역 5개국가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에 미얀마를 포함한 메콩강 유역 경제 벨트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심에 위치한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다. 한국과 캄보디아는 앞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양국은 서로 윈윈하는 상생의 결과를 얻으리라고 믿는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던 중, 이전에 소개한 ‘캄보디아 전자 정부 구축에 한국의 기술이 있다’ 글과 관련된 한국의 행안부 담당자가 곧 캄보디아에 파견되어 온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머잖아 이에 대한 후속 소식을 전할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날로 발전해 가는 한국과 캄보디아 관계만큼 남북한의 관계도 발전되어 통일의 날이 어서 오기를 소망한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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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정보공개절차[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최근 ㅇㅇ자격사의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험과정에서 나온 정보공개제도와 관련한 문제들로 인해 필자 또한 정보공개제도를 제대로 이해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의뢰인의 의뢰를 받고 업무를 수임받아 처리를 하는 우리일도 면밀하게 정보공개제도를 활용하고 있음에도 공개제도를 기점으로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점에서 정보공개제도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일반인도 필요할 경우 정부 및 법인의 공적자료와 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 시켜드리겠습니다. 정보공개제도는 근거법률인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1996. 12. 31.에 제정되어 시행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를 시행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실제 대한민국은 그 이전부터 토지대장, 지적도 등의 공부자료는 그 이전부터 공개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래전부터 공개제도는 있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제도의 본격화는 근거법률 제정을 기점으로 활성화가 되었다는 점은 인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보공개제도의 목적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 국민의 국정참여와 행정의 투명성, 신뢰받는 정부구현, 지식, 정보의 자산가치 증대로 국가정보의 균등배분 필요, 부정부패 및 비리방지 효과, 국민의 권리, 이익보호 및 구제 기능이라고 근거법률과 지침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이 요청하는 정보에 대해 권익과 헌법에 보장된 청구권을 충족시켜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정보공개의 대상은 공공기관이 직무상 작성 또는 취득하여 관리하고 있는 문서(전자문서 포함), 도면, 사진, 필름, 테이프, 슬라이드 및 기타 이에 준하는 매체 등에 기록된 사항으로 관련법령 제2조 제1항에 규정하고 있으며, 공개대상을 정부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령과 국무총리령을 확인하여 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정부투자기관(각종 공사), 각급 학교, 지방공기업,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의 적용을 받는 정부산하기관(한국감정원, 한국마사회 등),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법인(건설공제조합 등), 국가 또는 지방자체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사회복지법인 및 비영리법인(사단, 재단) 등 정부로부터 조금이나마 지원을 받거나 타 법률에 의해서 통제를 받아야 하는 단체까지도 정보공개대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 법률이라하면 예로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관리되는 아파트 자치 관리규약도 제ㆍ개정 이후 30일이내에 관할지역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보고되어야 하는데 보고된 아파트 자치 관리규약도 해당아파트 거주자가 정보공개를 청구할 경우 공개를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정보공개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서는 정보의 존재 자체가 비밀 사항인 경우,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인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공개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 등으로 개인정보보호법에 명시된 사항 및 국가 기밀이 아닌 경우는 통상으로 전체공개가 되는 점은 참고하시면 됩니다. 최근에는 ‘정보공개포털’이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손쉬운 가입절차를 통해 정보공개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일반인 또는 정보전문활용가(변호사, 행정사 등)의 정보파악에도 상당하게 많이 작용하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시간은 정보공개제도 및 공개대상 정보를 이 정도로 소개시켜드리고 다음시간에는 정보공개청구절차 및 불복신청 부분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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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손암 정약전⑤ 사촌서실기(沙村書室記)[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유배(流配)라는 형벌은 죄인을 아주 먼 곳으로 보내 일정한 곳에 배속시켜 활동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조선시대 유배는 무기형으로 군주의 사면이나 정치적 변동이 없는 한, 대부분 죽기 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유배지는 408곳이었다. 그중 전라도는 74곳이었고 유배횟수가 915회로 가장 많았다. 조선시대 유배자들에 대한 처우는 유배지마다 모두 달랐다. 어떤 곳은 일정한 거주 지역이 마련돼 있어서 집집마다 날짜를 정하여 돌아가며 먹을 것을 주는 곳도 있었지만 그것은 유배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려가 있었던 매우 드문 경우였다. 대개는 유배자가 스스로 의식주를 감당해야 했다. 다산과 이별하고 영광(靈光) 다경포(多慶浦)에서 출발하여 대해를 지나 소흑산도(우이도)에 도착한 손암도 마찬가지였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지역은 유배자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삶도 어려움이 많았다. 영조 38년(1762년)에 전라감영에서 올린 장계에 보면 ‘본도에 정배 죄인이 너무 많아 백성과 유배자가 모두 굶어 죽게 되었으니 타도로 유배자들을 옮겨 주기를 간청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을 정도였다. 손암이 소흑산도에서 큰 선비로서 주민들에게 학문적 지식을 나눠가면서 존경도 받고 따르는 제자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우이도 자체가 농지가 부족하여 주민들 모두의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 신유박해(1801년) 당시의 유배지, 특히 소흑산도의 손암은 더욱 그러했다. 육지로 유배를 간 다산은 어머니가 해남 윤씨 공재 윤두서의 손녀이고, 해남과 가까운 강진이라 먹고 자고 지내는 문제는 물론이고, 유배기간동안 수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와 학문적 소양을 깊고 넓게 닦을 수 있는 비교적 나은 환경이었지만, 정약전을 비롯한 멀리 떨어진 섬지역 유배자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정약전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농사짓는 것도 아니요 고기 잡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글을 아는 것과 글을 가르칠 수 있는 것 밖에 없었다. 다산의 제자 이강회가 쓴 운곡선설(雲谷船說)에 보면 ‘문순득(文淳得)이 말하기를 당시 정공(丁公, 손암)이 기거가 불안하여 자산(대흑산도)으로 옮겨가려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손암은 1806년경에 우이도에서 대흑산으로 적거지를 옮기고 사리(사촌)마을에다 서당을 열어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얼마 후 초가집 두어 칸을 짓고 사촌서실이라고 방(榜)을 써서 달았다. 그리고 동생 다산에게 기(記)를 지으라고 청해서 오늘날 기록이 남아 있다. 그것이 바로 ‘여유당전서 다산시문집 제13권 기(記)’에 실려 있는 ‘사촌서실기(沙村書室記)’이다. 다음 글은 다산이 지은 사촌서실기의 원문 해석이다. -누에치는 집에 몇 종류의 잠박(蠶箔)이 있는데, 큰 것은 면적이 넓어 잠실(蠶室)의 끝까지 닿고, 작은 것은 잠실의 4분의 1 정도이다. 간혹 잠실을 정(井) 자 모양으로 9등분하여 그 중 한 부분에 잠박을 놓았으나, 누에들은 좁은 상자에서도 오히려 편안히 지내며 여유 있게 살아간다. 지나가면서 이것을 보는 사람이 큰 잠박을 보고는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고, 좁은 상자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을 보고는 빙긋이 비웃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현부인(賢夫人)이 좋은 뽕잎으로 법에 따라 먹이면, 세 번 자고 세 번 깨어나서 성숙한 뒤에는 실을 토해내어 고치를 만들고 사람들은 이 고치를 켜 실을 만드니, 조그만 잠박의 누에라도 큰 잠박의 누에와 다름이 없다. 아, 어찌 누에만 그러하겠는가. 세계도 다 잠박이다. 하늘이 백성을 여러 섬에 퍼져 살게 한 것은 누에치는 아낙이 누에를 여러 잠박에 펴놓은 것과 같다. 우리들이 섬을 잠박으로 생각해 볼 때, 큰 것은 적현(赤縣)과 대하(大夏)라고 할 수 있으며, 작은 것은 일본(日本)과 유구(琉球)라고 할 수 있으며, 아주 작은 것은 추자도(楸子島)ㆍ홍의도(紅衣島)ㆍ가가도(可佳島) 같은 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이 큰 섬을 부러워하고 작은 섬을 비웃는 것은 잠박에서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진실로 박학군자(博學君子)가 있어 옛날 전적(典籍)을 많이 읽은 뒤에 법(法)에 따라 가르치면, 경전(經典)의 뜻을 변석(辨析)하게 될 무렵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러 사람과도 어울리며 나아가서는 성인(聖人)도 되고 현인(賢人)도 되며, 문장학(文章學)을 익힐 수도 있고 경세학(經世學)을 익힐 수도 있을 것이니, 조그만 섬의 백성들도 큰 섬의 백성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나의 형님 손암 선생(巽菴先生 손암은 정약전(丁若銓)의 호)께서 흑산도(黑山島)에서 귀양살이한 지 7년이다. 어린 아이들 대여섯 명이 형님을 따라 서사(書史)를 배웠는데, 얼마 후 초가집 두어 칸을 짓고 사촌서실(沙村書室)이라고 방(榜)을 써서 달았다. 그리고 나를 불러 기(記)를 지으라고 하기에 누에치는 잠박으로 비유하여 아뢴다. 가경(嘉慶) 정묘년(1807) 여름에 지음 - 이 글은 가경 정묘년 여름에 다산이 지었다. 이 때는 1807년(순조7년) 여름을 말한다. 내용을 보면 당시에 누에를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잠박(蠶箔)은 누에를 키우는 채반을 말한다. 잠실은 이 누에채반을 늘어놓는 방이다. 집집마다 누에를 칠 때 어떤 집은 잠실에 가득 잠박을 펼쳐 놓고 키우는데 어떤 집은 잠실의 4분의 1정도만 놓았고 어떤 집은 가난해서 잠실을 우물 정자 모양으로 방을 9등분을 해서 한쪽에만 잠박을 놓았다고 했다. 하지만 조그만 잠박의 누에라도 현명한 부인이 좋은 뽕잎으로 법에 따라 잘 먹이고 잘 키우면 큰 잠박의 누에와 다름없이 좋은 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어서 아, 어찌 누에만 그러겠는가. 세계가 다 잠박이고, 세계가 다 누에 키우는 것과 같다. 하늘이 백성을 여러 섬에 퍼져 살게 한 것은 누에치는 아낙이 누에를 여러 잠박에 펴놓은 것과 같다.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이 큰 섬을 부러워하고 작은 섬을 비웃는 것은 잠박에서와 마찬가지이지만 훌륭한 군자(君子)가 있어 법에 맞게 가르치면 성인이나 현인도 될 수 있을 것이니까, 조그만 섬의 백성들도 큰 섬의 백성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잘 새겨보면 아이들 대여섯 명을 데리고 경전과 역사서를 가르치는 형님의 이 조그마한 서실을 세상의 크고 좋은 서실들과 같은 높이에서 비교하며 격려하고 치켜세우는 문장이다. 잠실도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지만 누에가 자라 명주실을 뽑는 데는 차이가 없듯이 큰 서실이든 작은 서실이든 간에 누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섬의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높은 학문과 인격을 구비한 훌륭한 우리 형님이 가르쳐주니까 인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논조다. 이것은 형님의 학문을 은근히 높여주는 재기가 넘치는 표현이다. 다음은 허경진 교수(연세대학교)가 해석한 ‘손암 정약전 시문집’ 32제 40수의 시(詩) 중에서 22번째 제(題)의 시이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지은 시에 차운하다 (次兒輩晨起韻) 유리 같은 하늘에 반짝이던 별 드물어지고 琉璃天色爛星稀 닭울음소리 세 번 들리자 옷 입고 일어나네 三度鷄鳴起整衣 엄격한 과정 배우려면 느슨하게 할 수 없어 只爲嚴程鬆不得 가물거리는 등잔불로 아침 햇살을 기다리네 一燈殘焰待朝暉 손암은 젊은 시절에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성정이었으나, 남인 소장학자들과 교유하며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고 나서 등과와 입신을 위한 주자학류의 학풍보다, 유교의 근본인 공맹(孔孟)의 가르침에 전념하였다. 다산이 설명한 대로 손암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진리의 근원에 도달하고자하는 심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사촌서당의 아이들 글에 차운한 이 시에는 손암이 솔선수범하여 학동들을 가르치는 엄숙하고 근면한 스승의 풍모가 배어 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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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제주브랜드 공연문화예술상품 제주국제관악제[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제주의 서양음악 & 한국전쟁 훈련소군악대 무더위가 한창인 지난 8월 8일 제주아트센터에서는 26회를 맞이하는 제주국제관악제 개막경축음악회가 서귀포관악단과 제주&서귀포 합창단 및 광주시립합창단 등 약200명의 대규모 음악가의 출연으로 시작되었다. 코로나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관악제의 열기는 그 경력을 입증하는 듯 문화예술 분야를 넘어 제주도민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축제 그대로였다. 제주도의 서양음악은 1900년대초 찬송가의 전파를 거쳐, 1910~45년 일제강점기의 창가보급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을 관통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1년 약15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 중에 음악인 이성삼(후일 경희대 음악대학장), 이성재(후일 서울대학교 음대학장), 변훈, 김금환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짧은 기간이었으나 제주도민에게 순수예술 음악에 대한 가치관 형성과, 서양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제주도 관악의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을 계기로, 제주로 피난온 음악가들과 유엔 산하기관의 찰스길버트(Charles E. Gilbert)소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장기범, 제주국제관악제 그 뿌리를 찾아서-Charles E. Gilbert 중령의 업적과 교훈, 2017. 8. 15.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 길버트 소령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 민간기구협력 단체의 부사령관으로, 제주로 부임하여 한국보육원 밴드를 비롯하여 제주중학교, 제주농업고, 경찰악대, 구세군고적대 등을 지도하였고, 특히, 후일 제주관악의 모체가 되는 오현고교 관악대를 창설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제주국제관악제 & 관악콩쿠르 제주국제관악제는 제주 관악인들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1995년부터 시작되어 1998년에는 일본, 대만, 독일, 한국에서 참가한 전문앙상블단체, 관악독주 등 앙상블 축제를 신설하여 홀수해의 밴드축제와 병행하였다. 2000년부터 짝수해에는 관악콩쿠르가 앙상블 축제와 동시에 개최되었다. 또한 2004년에 제주국제관악제와 제13회 아시아태평양관악제(APBDA)가 동시에 개최됨으로써 APBDA 사상 최대 규모로 개최되었고, 2006년 제주국제관악제와 세계마칭쇼밴드챔피언십제주대회(World championship For Marching Show Bands, Jeju, arena)를 동시에 개최하여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관악콩쿠르는 2000년부터 시작되어, 2009년 4월 UNESCO 산하기구인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s) 인준을 받아 국제적인 공신력을 확보하게 되면서 세계적인 국제음악콩쿠르 반열에 올라섰다. 2021 제주국제관악제는 시즌제로 진행되는데 여름시즌은 지난 8월 8일 제주아트센터의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라이징스타ㆍ앙상블ㆍ관악단 콘서트, 청소년관악단의 날, 대한민국동호인관악단의날, 경축음악회 등이 이어지고 야외에서는 우리동네관악제도 예정됐다. 또한, 제주교육과 관악발전에 헌신한 고봉식 전 제주도교육감, 제주도 최초의 관악대 창설자로 알려진 길버트소령 관련 기록물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겨울시즌은 오는 12월 3일~7일 제주도립제주교향악단과 협연하는 현장 결선과 입상자 음악회가 계획되어있다. 또한, 창작 의욕을 높이기 위한 제주관악작곡콩쿠르도 처음 시도한다. 국가 문화정책의 방향이 다양하고 유니크 한 창작 분야를 지원하고 독려하는 흐름과 다행히도 잘 맞추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매우 긍정적으로 핵심을 잘 잡은 것이다. 제주 향후 백년의 먹거리 문화예술상품 제주국제관악제는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기관에서 그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의 평가내용을 보면 제주국제관악제는 관악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활용한 다양하고 우수한 프로그램의 유치, 국내ㆍ외 관악교류를 통한 지역홍보, 제주를 소재로 만든 창작관악곡 등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또한 정부지원 공연예술사업 평가보고서에 의하면 지원해야 할 축제로 분류하고 있다. 제주와 비슷한 소재와 여건을 가지고 있는 에든버러 군악대 축제의 경우 독특한 스코들랜드 군악대의 전통과, 고성(古城)인 에든버러성채, 이 두 가지의 독특한 문화적, 공간적 자원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프로그램측면에서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적절하게 조화하였고, 조직면에서는, 축제의 예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예술감독과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전문가의 조화속에 안정된 행정의 협조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에딘버러 군악대 축제는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인정받으며 전 세계에 샘플링되고 있다. 제주국제관악제는 지역의 시민 의식을 변화시켜 문화를 형성하고, 경제효과를 창출하여, 지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과 함께, 지역을 변화시키고 성장케하는 문화상품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나무를 심어 꽃을 피우고, 오아시스를 이루어 커다란 숲을 만들어가고 있는 처럼…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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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리더의 격(格) : 리더 사용 설명서[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리더가 몸을 잘 쓰는 것은 기본이고 마음을 잘 쓰는 것은 믿음을 주는 일이며 말을 잘 쓰는 것은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리더의 존재감은 몸에서 비롯되며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마음을 챙겨야 한다. 또한 지혜로운 리더는 말을 잘 활용한다. 우선 리더에게 어울리는 명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실패한다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성공의 참맛도 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실패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자. 준비된 자는 스스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 그것은 선순환으로 성공이 되어 어머니도 기뻐할 것이다. 둘째,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리더 자신의 역량보다는 조직원 개개인의 개성이나 능력을 잘 살려줌으로써 조직의 힘을 키워야 한다. 리더만 잘나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역량 강화로써 팀을 꾸려나가는 일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이 조직을 빛내는 원동력이다. 다음은 리더에게 어울리지 않는 속담이다. 첫째,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리더는 어정쩡한 위치인 중간에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의 역할과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앞장서야 한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리더의 모습이 필요하다. 혼자만 돋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에 있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 의미를 보면, 어디에서도 튀는 행동은 삼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속담과는 반대로 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시대가 아닌 신박함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속담도 트렌디하게 바뀌어야 한다. 이번에는 리더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살펴보자.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를 인정하고 배울 점을 찾고 존경심도 가져야 한다. 또한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을 만나도 투정하지 말고 약점을 찾으려 하지도 말며 질투심도 가져서는 안 된다. 진정한 리더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우리 인생의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행복한 인생을 누리고 싶다면 자신의 행복 기준을 너무 높게 잡지 말고 소소한 일상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삶이 필요하다. 기쁜 일에 정성을 기울여 보아라. 하루를 진지하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남을 탓하지 않고 주변을 원망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과거의 아픔과 마주선다. 지난 과거와 얼마나 손잡고 있는지, 앞으로 미래와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지 또한 오늘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지 잘 살펴보자. 그리하면 리더의 격(格)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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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캄보디아 전자 정부 구축 사업에 한국이 나섰다.[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필자는 코로나 펜데믹 이전까지 매년 캄보디아 제자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다. 나는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의 탐구도중요하지만 사회생활 전반에서 배울 수 있는 수많은 현상들 즉, 사회 시스템에서 경험하는 것도 소중한 배움의 한 부분이라고 믿는 교육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캄보디아처럼 많은 것들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당연히 경험에서 얻는 교육적 가치 창조가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세상에서 벗어나 더 넓고 역동적이며 온갖 현상들이 벌어지는 또 다른 세상의 일들을 겪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교육의 효과를 더 얻고자 하여 한국 방문 프로그램을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제자들이 한국의 사회, 교육, 산업 등 여러 분야를 경험하는 것은 그들이 강의실 밖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의 제자들은 한국 방문 이후 놀라울 정도로 미래에 대한 목적과 꿈이 분명해졌다. 또한 그들은 한국에서 생전 겪어보지 못한 방대한 정보의 홍수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경험을 하였다. 그런데 그 중 그들이 크게 놀라워한 일은 엄청난 정보가 생성되고 관리되면서 어떻게 유지되고 유통되는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예를 들면, 운행 중인 수많은 시내버스의 현재 위치를 어떻게 알 수 있고 어떻게 예고된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정류장에 도착하는지 신기하다 못해 신비로움으로 여겼다. 그들 중 나중에 한국에 유학을 갔던 한 학생은 수강 신청에서부터 과제물 제출 등 대학의 여러 학사 행정과 외국인 거주자 신고부터 비자 연장 등 국가 행정 서비스 경험은 또 다른 놀라움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이미 생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고 그 편리함과 효율성을 넘어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음을 망각할 정도로 보편화된 생활의 한 부분이지만 나의 캄보디아 제자들은 한국에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은 충격이자 그들이 짊어져야 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지 않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나의 제자들이 현장 체험으로 느낀 놀라움에 부족하지 않게 캄보디아 정부도 한국의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산업분야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행정 전산화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직 전 국민의 주민등록 전산화 작업이나 부동산 등기 업무 그리고 세무행정 전산화 작업등 국가 정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보통신 기술이 절대 부족하다. 이로 인해서 행정의 비효율성과 비용 증가는 당연하고 국가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캄보디아 정부는 자국의 행정 선진화 시스템 구축에 한국형 전자정부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여 지난 2019년 11월 ‘트람 입 택’ 캄보디아 우정정보통신부 장관의 한국 방문 시 ‘한-캄보디아 전자정부 협력 업무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의 ‘정부 24’와 같은 행정 서비스 포털과 전자결재 및 문서 유통시스템 구축, 공공 데이터의 개방 등 관련 시스템 구축을 희망하였다. 이 협약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사항이 있으니 그것은 한국 정부가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약 5억 원의 전자 정부 시스템 구축에 따른 마스터 플랜 수립 비용을 받기로 한 부분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케냐, 페루 등 다른 나라의 전자 정부 시스템 구축에 무상으로 도움을 준 일은 있으나 이 건 처럼 우리 정부가 외국 정부로부터 비용을 받고 전자정부 실현에 필요한 마스터 플랜 수립 지원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있기까지는 오래전부터 한국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15년부터 캄보디아 관계 공무원들을 초대하여 한국형 전자정부 시스템을 소개하였으며 캄보디아 주민등록 전산화 작업에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에 높은 신뢰감을 가졌고 결국 중국과 싱가폴의 제안을 마다하고 한국의 관련 기술을 그들의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캄보디아 정부의 전자정부 시스템 구현의지는 농업 위주의 산업 구조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바꾸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앙코르 왓’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 구조 개편에 국가 역량을 투입하고자 하는 국가 발전 비전에 기인한다. 바로 여기에 꼭 필요한 시스템을 한국 기술로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캄보디아 정부는 ICT 산업의 구축 없이는 중진국 진입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여기에 더해 캄보디아 경제의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캄보디아 정부는 인터넷, 통신 클라우드 등 기반시설의 개발과 디지털 안전에 따른 관련 보안 시설 그리고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도입 등을 한국의 기술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에서 산업 구조 변화를 이루고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려는 캄보디아 정부의 의지를 엿 볼 수 있다. 캄보디아 국가 발전에 한국의 자랑스러운 기술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서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해 본다. 그런데 나의 상상의 한편에 후진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캄보디아의 노력에 반해서 아직도 팩스 사용을 고집하고 대부분의 행정업무를 아날로그로 처리하는 후진적 행정 시스템의 천국이자 무늬만 선진국인 어떤 나라의 모습이 오버랩 되고 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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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도시를[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산내 종석산 아래 수침동 내가 태어난 마을도 새생명이 움트느라 고요하다. 회문산 추령천이 활처럼 산굽이를 돌고 돌아 만경대를 지나면 진상골 허궁실 사승골에서 달려온 물줄기들은 서로 반갑다고 얼싸안고 폭넓게 수침동 앞을 흐른다. 나는 지금도 마을의 논둑가 동네 뒷산을 보면 어린 시절의 풍경들이 눈에 선하다. 장금 초등학교 학생들이 200명이었던 그 시절엔 새너듸와 수침동 위 아래 아이들만도 50명이 훌쩍 넘어 골목이 늘상 와글와글 소란스러웠다. 낮에는 논둑에 서서 볼태기가 바람에 홍시처럼 터가며 연을 날리고 연싸움을 했다. 나무를 깍아 크레파스 칠을 한 팽이를 닥나무 줄기를 벗겨 묻은 팽이채로 넘어지지 않게 치며 논이나 냇가 얼음 위에서 팽이 싸움도 했다. 나무판에 철사를 박은 썰매에 무릎 꿇고 올라 못을 박은 썰매채를 얼음에 찍으며 내달렸다. 눈이 쌓인 날에는 비료 푸대를 들고 경사진 언덕에서 신나게 미끄러지며 구르고 엎어지며 또 잽싸게 언덕길을 올라 다시 미끄러졌다.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밖에서 동무들과 형들과 노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 없었다. 설이 지나 대보름이 올 때까지 동네는 날마다 소란스러웠다. 낮에는 연을 날리고 밤이면 불깡통을 돌리며 놀았다. 고구마를 가져다 구워 먹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밤마다 줄기차게 몰려 다녔다. 어느해였는가 손에 쥐고 돌리던 철사에서 떨어져 나간 불깡통이 별똥별처럼 날아가 누구네 소여물 건초에 떨어져 불이 붙는 바람에 초가집 지붕까지 홀라당 타버린 사건 사고도 일어 났다. 하지만 누구 불깡통이 날아가 사고가 났는지 찾아내 혼내지는 않았다. 애들이 놀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어른들은 힘을 합쳐 초가 지붕을 새로 얹고 소먹이를 나눠 먹였을 것이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풍족 하진 않았어도 너그럽고 따뜻한 인정이 살아있었다. 누구집에 가든지 먹던 고구마를 나눠 주었고 외지에서 친척이 맛난 것을 들고 찾아오면 나눠서 집집이 맛을 보였다. 어느 겨울 고흥에서 유자를 가져온 친척이 있었다. 그 향내 좋던 노란 유자 하나를 온 동네 아이들이 한쪽인가 반쪽인가 나눠 먹었다. 입에 넣자 마자 금새 혀아래 침이 고이고 저절로 눈이 감기던 그 시디 신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이런 유년 시절을 보낸 덕분에 나는 요즘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어릴적부터 휴대폰과 게임, 책과 공부에만 둘러 싸여 자라는 것이 때때로 안타깝다. 어린 시절은 흙과 눈과 바람 속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며서 자연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 실수를 해도 혼내지 말고 내 아이든 이웃아이든 너그럽게 길렀으면 좋겠다. 밖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만큼 저절로 미소짓게 하는 것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다양하게 장래계획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그것이 자기 새가 둥지를 떠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자기 삶을 스스로 사는 출발이 아닌가. 아이들이 자연속에서 친구들과 더 오래 놀 수 있도록 어른들이 맘을 써야 한다. 놀아야 행복하고 놀아야 건강하다. 인생이 100세인 시대에 마음껏 노는 시절 또한 더 늘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는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이다. 숨을 멈추고 살금살금 잠자리를 잡기 위해 손을 내밀 때 느껴지던 그 아슬아슬함이나 물고기를 잡으러 물풀과 모래를 맨발로 밟던 감촉이나 보리밭에 종달새 둥지를 찾아 헤매던 그 감정의 픙요로움이 꽃 필 수 있어야 한다. 맨발 벗고 종일 흙 파며 놀 수 있는 흙 놀이부터 온몸을 물에 적시며 돌과 모래를 파고 놀 수 있는 물놀이터, 강아지와 마음껏 뛰어 다니며 놀 수 있는 반려견 놀이터가 있는 도시를 만들자. 청소년들이 자주 높은 산을 오르고 호수에서 노를 젓고, 새처럼 날아가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정읍시 예산 1조원 시대, 시민 한명당 예산 1천만 원이다. 아이들은 충분히 놀이터를 제공받고 누릴 권리가 있다. 세금으로 책정된 예산은 어른이나 아이나 청소년이나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그래야 정읍이 되살아 난다. 지금 정읍에 사는 사람이 우선 먼저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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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폐기물 배출신고제의 이해[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약 40년 전에는 지금은 폐기물로 분류가 되는 물질에 관한 처리를 하기위해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심지어 마을이나 동네 어귀의 공터에 사람들이 사용하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거나 방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으며, 또한 이를 문제삼는 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관심사가 탄소배출권과 탄소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기후협약(교토협약) 등의 발휘로 탄소배출권 등 거래가 활성화됨으로써 우리나라도 세계추세에 부합한 탄소배출권과 환경보호 등의 법률 강화를 통해 후세에 아름다운 강산을 물려주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 중 하나로 폐기물신고 등의 의무 및 강제화를 통해 환경 정책 및 법률을 시행하고 있으며, 폐기물에 관련된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수준은 점점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환경부 보도에 따르면 불법폐기물 발생 책임자에 대하여 징벌적 성격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폐기물 관리법’ 이 개정공포(2019.11.26.)되어 시행(2020.05.27.)되고 있으며, 징벌적 성격의 과장금의 내용을 살펴보면 불법폐기물로 인해 취득한 부적정 처리이익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과 불법폐기물의 제거 및 원상회복에 소요되는 비용을 책임자(토지소유자, 불법가담자)에게 부과 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컬럼 글을 보시는 분들도 알겠지만, 요즘은 소형의자나 고장난 폐가전을 버릴 때도 관할 읍ㆍ면ㆍ동사무소에 일정금액을 지불한 스티커를 구매 및 부착 후 버려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과거에 이사를 하거나, 집안 대청소 시 무분별하게 버리던 상황에서 현재는 무조건 신고를 해야만 제도가 정착이 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으며, 사업장 또한 일정수준 이상의 폐기물이 발생되면 무조건 배출자 신고를 통해 폐기물을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이를 간과할 경우 심각한 과징금이 부과되어 종래에는 사업 운용에도 막대한 지장이 발생됩니다.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쓰레기 무단투기 신고포상금을 적용 및 인상을 시켜 쓰레기 등이 폐기물 투기를 방지하고 있으며, 실제 ㅇㅇ시청에서는 담배꽁초, 휴지 등 휴대하고 있는 생활폐기물을 버리는 경우 과태료는 5만원 이상을 부과하고 신고한 자에 대한 포상으로 1만 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으며, 사업활동 과정에서 발생되는 생활폐기물을 버리거나 매립, 소각한 자를 신고한 경우 그 포상금은 40만 원 수준으로 현금으로 즉시 지급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불법폐기물에 대한 대응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법률과 법령이 강화되어 살기가 어려워 지기보다는 환경보호를 통해 후세에도 지금의 강산을 물려주기 위한 것으로 현재 폐기물 관리법의 강화에 대한 불평보다는 오히려 강화에 대해 호응을 해주는 평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이 컬럼 글을 쓰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많은 법률 중에 환경과 관련된 법률은 향후 강화가 될 것으로 예상이 되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극복하지 못하는 처벌과 처분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이 되니, 혹시 집안에서 불필요하여 방출한 쓰레기가 폐기물 관리법에 접촉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하셔야 하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 중 일정수준 이상의 폐기물이 발생되는 경우는 정확한 판단을 하여 배출신고를 하여 예상되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시길 당부드립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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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인공지능② 인공지능시대의 예술[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인공지능의 진화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인간 만의 영역으로 여겨 왔던 모든 분야를 놀라운 속도로 대체해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거쳐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기계를 지능적으로 만드는 과학으로 처음에는 개발자가 특정 규칙을 설정하고 데이터를 제공해야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 뒤 머신러닝은 개발자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 AI가 학습하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판단과 예측을 하였다. 현재 딥러닝은 인공신경망에서 발전한 형태의 인공지능이다. 분류에 사용할 데이터를 스스로 선택하고 자체 규칙 시스템을 구축하여 반복적으로 자체 학습을 발전해 나가는 수준이다.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인공지능 예술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인공지능 예술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생활환경과 예술 활동이 느린 속도로 진행되거나, 아예 멈추고 있는 혼란스러운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 예술의 변화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머신러닝 기법을 이용하여 여러 문화산업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활용을 넘어 협업의 형태로 접어들고 있다. 인공지능과 예술가의 공동작업이 보편화 되어 가는 현상을 보면 고대로부터 조금씩 분리 되어 왔던 예술과 기술이 다시 결합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인간 예술과 기계 기술의 구분이 불분명해져 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 ‘넥스트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가 그린 초상화 2016년,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18개월에 걸쳐 완성한 ‘넥스트렘브란트’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하고 인공지능과 3D 프린터를 사용하여 17세기 화가 렘브란트가 직접 그렸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의 놀라운 초상화를 출력했다. ‘넥스트렘브란트’라고 명명된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사용한 구도와 화풍을 비롯하여 붓의 기법, 유화의 질감까지 모든 분석 데이터를 완벽하게 학습하여 구현되었다. 주목할 점은 알고리즘이 작품의 주제를 스스로 선택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창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제공한 콘텐츠에 관한 데이터 없이 인공지능이 단독으로 창작하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인공지능에 대한 화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어야 하는 단계이다. 인공지능 에밀리 하웰(Emily Howell)이 작곡한 모차르트 교향곡 ‘에밀리 하웰’은 미국 데이비드 코프 교수(미국 UC 산타크루스 캘리포니아대학)가 개발한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이다. 하웰은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박자와 구조 등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자료화하고 조합하여 수학적으로 분석한 다음 추출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작곡한 ‘모차르트 이후의 교향곡(음악적 지능의 실험) 1악장’을 2016년 여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로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모차르트 vs 인공지능 음악회’에서 발표하였다. 호기심에 가득 찬 1천 5백여 명의 관객들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과 인공지능이 작곡한 모차르트풍의 교향곡을 각각 듣고 인간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을 선택해 투표하는 블라인드 테스트 이벤트를 경험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투표 결과 관람객의 대부분은 786명 중 514명이 인간 모차르트의 곡을 선택했다. 인공지능의 예술작품 창작은 가능한가 현재 진취적인 작가들에 의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많은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의 빠른 진화에 발맞출 수 있는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예술이라기보다는 컴퓨터 아트나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시도로 볼만한 정도에 불과하다. 앞으로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조합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신형 결과물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인공지능 예술창작이라거나 인공지능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미학적 정의의 범주에 포함시킬만한 구체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나 감상의 느낌을 갖지 못하고 제작 과정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할 수가 없다. 작품에 대한 평가 기준이나 평가 작업도 불가능하다. 예술의 기본조건인 작가의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인간만이 가능하다. 인공지능과 예술의 미래 많은 예술가들이 인공지능이 우리의 영역을 빼앗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인공지능에 대해 기본적인 정확한 정보를 모르는 입장이라면 공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걱정에 앞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이 예술가들의 삶에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 예술의 미래는 예술가와 인공지능의 대결이 아니라 예술가와 인공지능의 협업과 공존이다.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전할 때 직업의 영역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변화를 수용하고 변화에 맞춰나가는 자세와 의지가 필요하다. 고정관념을 접고 급격히 변하는 사회 환경과 작업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적응과 색다른 창의력을 작동시켜야 한다. 예술적 창의성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힘이 바로 예술적 창의성의 원천이다. 상황의 어려움이 창의력을 키운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교훈이다.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