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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손암 정약전① 조선시대 카메라 렌즈 ‘칠실파려안’

입력 2021.06.07 08:58
수정 2021.06.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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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송 문화예술학 박사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 예술감독
    현판1.jpg
    임 송 박사 사진제공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은 역사학계에서 조선 후기의 뛰어난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분류한다. 특히 성호 이익으로부터 시작되는 성호학파의 3세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 성호학파의 3세대 가운데서도 이가환, 정약용 등과 함께 천문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기하학이나 수학, 과학 뿐만 아니라 지리에 대해서도 남다르게 뛰어난 조예가 있었던 사람이다. 특히 생소한 서양문물에 대한 이해와 개념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한 지혜가 있었다.

     

    광학이라고 하면 빛의 굴절이라든가, 빛에 대한 성질이나 현상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정약전은 빛의 굴절 현상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1806년경에 쓴 아우 다산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정약전은 주로 관찰을 통해서 해나 달이 떠올라 지평선 위에 보이는 현상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섬들이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비가 오려고 하면 홀연히 나타나 보이는 현상, 비가 오려고 하면 푸른 산이 가까이 보이고 초목과 암석이 뚜렷하게 잘 보이는 현상, 그리고 신기루의 현상이나 먼 것을 이끌어 가깝게 보이게 하는 망원경의 원리 등이 모두 빛의 굴절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에게도 그러한 현상에 대해 더 이상 신기하게 여기지 말라고 편지에 적어 보냈다.

     

    초상화1.jpg
    임 송 박사 자료제공

     

    정약전은 ‘암실 원리’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터득해서 이를 실행하였다. 다산 정약용이 쓴 ‘여유당집’에 수록되어 있는 ‘복암 이기양’의 묘지명에 보면, “나의 형님 손암 정약전이 자신의 집에 설치된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에다 유리를 이용하여 이기양을 본보기로 삼아 거꾸로 된 그림자를 취하여 초상화 초본을 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칠실파려안’은 조선시대에 렌즈(Lens)가 부착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우리식으로 표현하여 명칭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칠실(漆室)은 옻칠 칠(漆)에 방 실(室) 자이므로 옻칠을 한 것처럼 깜깜한 방을 말하고, 파려안(玻瓈眼)은 유리나 수정을 가리키는 말인 파려에 눈 안(眼) 자를 붙여서 렌즈라는 말이 되므로 ‘칠실파려안’은 ‘암실 원리’를 이용한 ‘렌즈달린 카메라 옵스큐라’를 뜻하는 것이 된다.

     

    ‘카메라(Camera)’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카메라 옵스큐라’ 라고 하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하고, 서양에서 오랜 옛적부터 일식을 관찰할 때 사용하던 방법과 ‘암실의 원리’를 뜻하는 말이다. 카메라의 역사를 보면,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에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h 1452-1519 이탈리아)’가 어두운 방의 벽에다 작은 구멍을 내고 거기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 바깥 풍경이 반대편 벽면에 거꾸로 비치는 것을 원리로 하는 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근거로 하여 그림을 그릴 때 사물을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과 똑같이 보이도록 앞의 것은 크게 그리고 뒤의 것은 작게 그린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거리감을 주어서 화면에 묘사하는 원근법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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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송 박사 자료제공

     

    이것이 16세기에 ‘포르타(G.d. Porta 1535-1615 이탈리아)’라는 과학자에 의해서 널리 알려지면서 렌즈와 조리개 같은 기구로 발달하고 개량 되어서 현대의 카메라와 유사한 모양과 성능의 구조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카메라의 원조를 ‘카메라 옵스큐라’ 라고 불렀고, 이 ‘암실의 원리’가 조선 후기에 조선의 실학자들에게 전해져서 ‘칠실파려안’이라는 용어와 함께 정약전이 이것을 활용했다는 것이 최초로 여유당전서에 기록되어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