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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㊵ 시각장애 여성음악가 파라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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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㊵ 시각장애 여성음악가 파라디스

임송 문화예술학 박사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 예술감독

일괄편집_임송박사 자료제공 1.jpg
임송 박사 자료제공 - (Maria Theresia Paradis, 1759~1824)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마드모아젤 파라디스의 피아노'의 한 장면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모차르트의 제자들

이론보다는 실제 연주로 가르치기를 즐겨했던 모차르트가 빈에서 함께 한 제자들을 살펴보면 오르간 주자이자 작곡가로 런던 필하모닉 재단의 공동 창립자이자 지휘자였던 애트우드(Thomas Attwood, 1765~1838)와 주로 고전시대 오페라로 널리 알려진 스토레이스(Stephen John Seymour Storace, 1762~1796), 그리고 빈의 작곡가이자 피아노 교사였던 프레이슈태틀러(Franz Jakob Freystädtler, 1761~1841)를 꼽을 수 있다.

 

에트우드와 스토레이스는 영국에서 빈으로 건너왔다.

 

여성 제자로는 요세파 바바라 아우언함머(Josepha Barbara Auernharmmer, 1758~1820), 마리아 테레지아 파라디스(Maria Theresia Paradis, 1759~1824), 바베테 플로이어(Babette Ployer, 1765~1811)를 들 수 있다.

 

모차르트의 제자들에 대한 연구결과는 현재에도 많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추정은 가능하나 실증에 어려움을 겪는 분야가 바로 여성 제자들에 대한 부분이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계몽주의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본주의의 발달과 시민계급의 각성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음악의 역할은 시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예술로 꾸준히 성장하였다.

 

빈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계에도 이러한 흐름위에 이따금 나타났던 재능 있는 여성음악가의 시대를 이겨낸 도전의 결과물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민계급 여성의 등장은 시민계급 여성음악가의 탄생과 성공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빈 음악가협회(Wine Tonkünstler Societät)를 통해 열린 음악회와 아카데미의 기록물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시각장애 여성음악가 마리아 테레지아 파라디스

모차르트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마리아 테레지아 파라디스(Maria Theresia Paradis, 1759~1824)는 시각장애 여성음악가로서 유럽 여러 나라의 여성과 동료 음악가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이 되고 그들로부터 많은 인기와 깊은 존경을 받았다.

 

파라디스는 오스트리아의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비서이자, 오스트리아 정부 참의원과 의장을 지낸 요제프 안톤 폰 파라디스(Joseph Anton von Paradis, 1733~1808)의 딸로 태어났다.

 

안톤 파라디스를 매우 신임했던 테레지아 황후는 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 파라디스의 대모(代母)를 자청하고 친자식처럼 사랑을 쏟았다.

 

파라디스는 안타깝게도 세 살에서 다섯 살 때로 추정되는 시기에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황후는 후견인으로서 불쌍한 대녀(代女)를 위해 최상의 음악교육을 받도록 아낌없이 배려하였는데, 파라디스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와 노래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소녀 신동’으로 불렸다.

 

1770년에는 11살의 파라디스가 대모인 황후 앞에서 40여분이 소요되는 페르골레지(G. B. Pergolesi, 1710~1736)가 작곡한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소프라노 부분을 완벽하게 감동적으로 불러서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노래 한 중세 시대의 시이다. 창작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교황 인노첸시오 3세,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라코포네 다 토디, 요하네스 보나벤투라 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총 20절의 3행시로 이루어져 있다.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Pergolesi: Stabat mater, for Soprano & Alto

https://youtu.be/FjJ02agjjdo?si=gOGr_yoklXxakKkR 여기를 참조하세요

 

파라디스가 유럽 연주여행에서 얻은 성공

파라디스는 어린 나이에 시력을 잃었지만 성악가로,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열심히 실력을 연마해 나갔다. 파라디스는 빈에만 머물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을 위해 나무로 작곡판을 만들어 준 어머니 요한 리딩거(Johann Riedinger)와 함께 유럽 연주여행을 떠났다. 가장 먼저 1783년 8월에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의 집을 찾아갔다는 것이 모차르트의 누이 난네를의 일기에 남아있다.

 

모녀는 잘츠부르크를 떠나 프랑크푸르트와 다른 독일 여러 곳에서 연주여행을 마친 후 1784년 3월에는 파리를 방문했다.

 

4월에 파리(Paris)의 콘서트 스피리투엘(Concert Spiritue)에서 열린 연주회를 마친 파라디스의 인기는 대단했다.

 

파리의 주요 일간지 ‘Le Journal de Paris’의 리뷰 기사는 “그녀가 연주한 터치의 정확성, 유창함, 생생함은 끝없는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감동을 주었다”고 전했다.

 

파라디스의 연주는 파리를 감동시켰고, 발렌틴 아우이(Valentin Haüy,1745~1822)가 프랑스 최초의 시각장애인 학교를 설립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발렌틴 아우이는 당시 고대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등 10개의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숙련된 언어학자로 루이 16세로부터 ‘왕의 통역사’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이었다.

 

평소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작성방법을 개발하고 있던 그는 파라디스의 천재적인 연주로 인해 충동을 받고 1784년 9월에 발표한 양각문자 발명의 성공을 계기로 다음해인 1785년에 청소년을 위한 시각장애인 학교를 설립했다. 이어서 루이 16세의 지원을 받아 그 다음해인 1785년 12월 26일에 이 학교를 프랑스 왕립 시각장애인 청소년기관으로 승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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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송박사 자료제공 - 발렌틴 아우이(Valentin Haüy, 1745~1822)의 동상 국립청소년시각장애인연구소

 

파라디스는 1784년 후반에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수개월 동안 지내며 법원과 칼튼 하우스(웨일즈 왕자의 타운 하우스), 하노버 광장의 전문 콘서트에서 공연했다.

 

그녀는 조지 3세 앞에게 헨델의 푸가를 연주했고 나중에는 첼리스트인 웨일스 왕자와 함께 연주했다. 런던 타임스(Times of London) 기사에는 그녀에게 ‘눈 가린 요술사’라는 애칭을 붙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파라디스의 ‘시칠리안느’

‘Sicillenne’ by Maria Theresia von Paradis

https://youtu.be/k8WEDXOQlC8?si=ryDKhuRYObXVN8AJ 여기를 참조하세요

 

파라디스는 계속해서 서유럽(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를 만난 함부르크 포함) 순회공연을 펼친 후 베를린과 프라하를 거쳐 1786년에 비엔나로 돌아왔다.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파라디스는 피아노 독주곡뿐 아니라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곡도 작곡하기 시작했다. 현재 확인된 파라디스의 초기 주요작품은 1784년에서 1786년 사이에 작곡된 '여정 가운데 만든 12곡(Zwölf Lieder auf ihrer Reise in Musik gesetzt)'이 있다.

 

1789년부터 파라디스는 연주보다 작곡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797년까지 그녀는 5개의 오페라와 3개의 칸타타를 작곡했지만 1797년 오페라 ‘리날도와 알치나(Rinaldo und Alcina)’가 실패한 후에는 가르치는 일에 더 힘을 쏟았다.

 

1808년, 파라디스는 빈에 자신의 음악 학교를 설립했다. 어린 소녀들에게 노래, 피아노, 이론을 가르쳤다. 이 학교에서 열린 일요일 콘서트 시리즈에서는 뛰어난 학생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녀는 1824년 사망할 때까지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어짐>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leaderjj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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