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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㊱ 프리메이슨과 모차르트의 인생 후반

입력 2024.01.15 07:54
수정 2024.01.1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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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송 문화예술학 박사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 예술감독
    일괄편집_임송 박사 자료제공1.jpg
    임송 박사 자료제공 - 젋은 두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곡한 프리메이슨 장례음악 C단조 K.477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free mason)

    인류사에 이름을 남긴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갔다.

     

    그 가운데 한사람의 음악가로 살다간 모차르트도 비록 35년의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짧고 굵게 치열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며 음악을 만들었다. 작곡과 연주를 통해 인생의 역경과 고난에 대한 투쟁, 잠시나마 자신을 품어 준 행복과 환희, 그리고 그가 꿈꾸던 상상의 세상을 표현하였다.

     

    모차르트의 일생에서 프리메이슨은 매우 중요한 관계를 형성한다.

    1784년(28살) 12월 14일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고, 프리메이슨의 사상이 표현된 작품들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단체의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헌신하여 마스터 메이슨(Master mason)의 위치에 일 년 만에 올라가기도 했다.

     

    프리메이슨 장례음악(Maurerische Trauermusik) C단조 K.477

    이 곡은 갑작스럽게 연이어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프리메이슨 형제 중 두 명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공작(Duke Georg August)과 프란츠 에스터하치 백작(Franz Esterházy)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하여 1785년 11월 17일에 거행된 프리메이슨 장례식에서 자신의 지휘로 연주한 작품이다.

     

    약 6분이 소요되는 C단조 K.477은 시작부터, 죽음으로 이별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쓰라린 슬픔이 펼쳐지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유발한다. 목관악기의 화음이 흐느낄 때, 깊은 한숨이 심장을 뛰게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의기투합했던 동료를 보내는 애절한 아픔이 전이되며 통곡을 부른다.

     

    이 작품은 2개의 오보에, 1개의 클라리넷, 3개의 바셋 호른, 2개의 콘트라바순, 2개의 호른과 트럼펫, 3개의 트럼본, 팀파니 및 현악기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경하는 젋은 두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곡한 프리메이슨 장례음악(Maurerische Trauermusik) 자필 악보는 베를린 주립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https://youtu.be/KM3S_2pjiRE?si=suaB50-xLLb7fIqs

     

    프리메이슨의 유래

    프리메이슨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구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직이다.

    원래는 1220년경에 영국의 교회 건물을 주로 건축하던 석공들의 단속을 위해 구성된 ‘런던 석공 동업조합(London mason guild)’으로 출발하였다. 조합에서는 차지(charges)라고 하는 규율로 석공들을 통제하고 의무를 규정하였다. 석공들은 마스터와 고용주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의 기술과 조직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야했다.

     

    이후 이 조직은 1717년 영국에서 최초로 건축기술의 연구와 숙련자 양성 그리고 신앙과 도덕을 지키며 지식을 연마하는 것을 목적으로 공식적인 단체로 창립된 후, 자유ㆍ평등ㆍ박애를 기본정신으로 삼아 인도주의, 시민주의, 박애주의를 지향하며 1725년에는 프랑스에, 1742년에는 오스트리아에 조직되었다.

     

    독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위스로 확산된 프리메이슨은 인도, 북아메리카 등 영국의 식민지로 범위를 넓혀 미국까지 퍼져나갔다.

     

    프리메이슨은 유럽의 계몽주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각 나라별로 독자적인 발전과 단체의 존속을 이어갔다. 회원끼리는 자신들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로이 표방하지만 외부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비밀결사체와 같은 인상을 보였다.

     

    오늘날에도 세계 각처에서 조직을 확보하고 있는 프리메이슨은 이제는 비밀단체도 아니고, 계몽주의의 결과물인 자유, 평등, 형제애, 관용, 인간성 회복 등 5가지 정신을 표방하며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는 우애단체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종교와 정치에 대한 논쟁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삼고 있다.

     

    일괄편집_임송박사 자료제공 2.jpg
    임송 박사 사진제공 - 후안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지휘하는 스페인의 CSMA 심포니오케스트라 Orquesta Sinfónica del CSMA, Juan Luis Martínez

     

    권력자와 음악가들에게까지 스며든 프리메이슨

    요제프 2세 황제는 가톨릭 신앙을 공고히 하고 계몽주의에 의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처음에는 프리메이슨에 대해 우호적 정책을 펼쳤다. 빈의 상류층과 지식인들에도 프리메이슨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었다.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Ⅱ, 1712~1786)과 오스트리아의 국왕 요제프 2세 자신과 미국의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등도 이 단체에 소속되었다.

     

    음악가들에게서도 큰 호응이 일어났다. 글루크,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 하이든과 모차르트도 프리메이슨의 일원이 되었다.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깊은 내면의 소리가 우러나는 프리메이슨의 의식에 필요한 곡들을 많이 작곡하였다.

     

    프랑스혁명 이후 요제프 2세는 프리메이슨 단체의 규모가 매우 급속히 늘어나고 크게 번성하게 되자, 개혁 통치에 장애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프리메이슨 활동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하였지만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어짐>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