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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㉒ 자유를 꿈꾸는 영혼! 새장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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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㉒ 자유를 꿈꾸는 영혼! 새장에 갇히다!

임 송 문화예술학박사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 예술감독

일괄편집_image01.jpg
임 송 박사 사진제공 - 모차르트 가족들이 탔던 실물 크기의 마차 모형 - 아우구스부르크 박물관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군주의 엄격한 고용 방식과 고용인의 이유 있는 반항

1781년(25살) 1월 25일, 오페라 '이도메네오(Idomeneo)'를 보기위해 잘츠부르크를 출발한 아버지 레오폴트와 누이 난네를이 뮌헨에 도착했다. 1월 29일, 퀴빌리에 극장(Cuvilliés Theatre)에서 '이도메네오'가 초연되었다. 모차르트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 이틀 뒤였다. 이 공연은 사육제가 끝나는 3월 8일까지 3회 공연되었다. 3월 12일, 아버지로부터 ‘수행원 자격으로 빈으로 오라는 콜로레도 대주교의 명령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초연이 있기 두 달 전인 1780년 11월 29일, 40년 간 합스부르크 제국을 이끌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가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90여 명의 제후들과 귀족들의 관심은 일제히 합스부르크 왕조의 수도인 빈으로 집중되었다. 통치권을 물려받은 아들 요제프 2세 황제는 어머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개혁군주의 길을 시작하며 1781년 초에 제후들에게 친서를 보냈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요제프 2세 황제의 친서를 받고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향했다. 친서 내용에는 황제의 개혁정책에 관한 것으로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종교의 자유와 빈에서의 유대인 거주를 허락하는 것 등이 들어 있었다. 황제의 정책을 따르기 위해 빈에 도착한 콜로레도 대주교는 황실의 관료인 아버지(루돌프 요제프 콜로레도 백작)의 병환으로 과거 독일 기사단의 본거지였던 징거슈트라세 7번지에서 궁정(宮廷)을 정해 상주하고 있었다.

 

3월 16일에 빈에 도착한 모차르트에게는 당일부터 빈의 귀족들과 러시아 대사 앞에서의 연주를 비롯한 바쁜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잘츠부르크의 제후로서 통치자였다. 모차르트는 궁정 음악가로서 귀족의 하인이었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이를 엄격히 적용하였다. 연주를 하기 전에는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고 식사도 다른 하인들과 함께 하도록 했다. 궁정을 벗어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했다.

 

대주교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빈의 음악인들과 잘 소통하였고 음악 애호가들의 초청이 계속되었다. 4월 5일, 모차르트는 후원자의 한 사람인 툰 백작부인의 저택에서 열리는 요제프 2세 황제가 참석하는 연주회에 초대받았다. 날짜는 4월 8일 이었다. 이를 알게 된 콜로레도 대주교는 부관인 아르코 백작에게 4월 8일에 대주교의 가족음악회를 개최하도록 하고 모차르트의 참석을 지시했다.

 

모차르트가 툰 백작부인의 초대가 먼저 이루어진 약속이므로 반드시 참석해야한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지만 아르코 백작은 콜로레도 대주교의 지시가 우선이라며 보내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상류사회의 품위를 익히며 자유인을 추구하는 인식을 갖게 된 모차르트는 답답하고 분노의 감정이 끓어올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괄편집_image02.jpg
임 송 박사 자료제공 - 모차르트가 쓴 1781년경의 편지 일부 이미지

 

-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빈에서, 1781년 4월 8일

……

 

극장에서 받은 갈채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드렸죠. 좀 더 말씀드려야겠네요. 무엇보다도 기쁘고 또 신기했던 건, 놀라울 만큼 관객이 정숙했고, 연주 중에 브라보! 라는 외침이 나왔다는 겁니다. 이처럼 피아니스트가 많은, 게다가 우수한 피아니스트가 즐비한 빈에서 대단한 명예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밤 11시인데, 오늘 우리는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제 곡이 3곡 연주되었습니다. 물론 신작이에요. 브루네티를 위한 협주곡에 속하는 론도 K 373과 제가 피아노를 치는 바이올린 반주부 소나타 K 379(373a), 지난밤 11시부터 12시까지 쓴 곡인데, 일단 마무리하기 위해 브루네티를 위한 부분만 써놓고 제 파트는 머릿속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체카렐리(카스토라토 가수)를 위한 론도(소프라노를 위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K 374)는 그가 반복해서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다음 건에 대해 아버지로서, 그러니까 가장 친절한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편지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2주 뒤에는 잘츠부르크에 가기로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 남으면 그저 손해를 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득을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남도록 허가해달라고 대주교에게 탄원할 생각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참 좋아요. 이미 미루어 아실 겁니다. 저는 그 어떤 소망도 욕망도 아버지를 위해 단념하고 있어요. 그러나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지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근무를 그만둔 뒤 큰 연주회를 열고, 4명의 제자를 받고, 적어도 1년에 1000탈러를 벌 때까지 계속했을 겁니다.

 

맹세하건대, 제 행복을 이런 식으로 미루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말씀대로 저는 아직 젊고, 그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젊은 세월을 이렇게 거지꼴로, 하는 것 없이 보내버린다면, 매우 슬프고 아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연주와 작곡을 하며 빈에서 작은 성취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1780년 12월 16일의 편지에서는 궁정에서 쫓겨나면 오히려 기쁘겠다고 했고, 4월 4일의 편지에서도 빈에서 머물고 싶다는 의사를 아버지에게 표현했지만 4월 8일의 이 글에서는 잘츠부르크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4월 9일, 모차르트는 툰 백작부인에게서, ‘빈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드러내야 하며 가치를 모르는 주인을 위해 재능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음악가들은 황제로부터 50두카트(약 1000만원: 18세기 통화환산)의 사례금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잘츠부르크 궁정악장 급여의 반년 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모차르트는 다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편지를 썼다.

 

-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빈에서, 1781년 4월 11일

 

가장 좋아하는 아버지!

우리는 그대 하느님을 찬미하리라! 내주 일요일, 그러니까 22일에 체카렐리와 저는 고향을 향해 떠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1000플로린을 벌 수 있는 빈을 떠나야 한다니, 역시 가슴이 아파옵니다. 400굴덴의 푼돈로 저를 매일 속 썩이는 한 군주 때문에 1000굴덴을 걷어차라는 겁니까? 정말로 제가 연주회를 열면, 틀림없이 그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서 처음으로 큰 연주회를 열었을 때, 대주교는 저희 3명에게 4두카텐씩 보내줬습니다. 전날에 했던 연주회, 그러니까 제가 브루네티를 위해 새로운 론도를, 저를 위해 새로운 소나타를, 그리고 체카렐리를 위해서도 새로운 론도를 지은 그때에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거의 절망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 똥 같은 음악이 있었던 똑같은 날 밤 툰 백작 부인 댁에 초대받았는데, 그런 일 때문에 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거기 누가 와 있었을 것 같으세요? 황제입니다!

아담베르거(테너)와 바이글(부인, 가수)이 와 있다가, 50두카텐씩 받았답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였습니까! 황제가 제 연주를 듣고 싶어 하신다면 서둘러야죠. 며칠 지나고 나면, 저는 떠난다는 따위의 말을 설마 제가 황제에게 전해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언제든 예상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또 연주회가 아니면 저는 여기 머물 수가 없습니다. 머물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실 여기에 제자가 2명 정도 있다면, 물론 집에 있는 것보다는 편합니다. 그러나 1000플로린이나 1200플로린이 지갑에 있다면, 좀 더 부탁을 받을 수도 있고 따라서 받을 보수도 올라갑니다.

……

 

이번에 편지가 오는 날이면, 제가 청춘과 재능을 앞으로도 더 잘츠부르크에 파묻어두는 게 나을지, 가능하다면 스스로 운을 붙잡아도 괜찮을지, 놓쳐버릴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읽을 수 있게 해주시겠죠? 2주나 3주 안에는 물론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천 년이 걸려도 불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

                                   <다음으로 이어짐>

 

◈ 본 전문가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leaderjj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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