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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 ⑯ 제2차 파리여행6 (만하임을 떠나 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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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 ⑯ 제2차 파리여행6 (만하임을 떠나 파리로)

임 송 문화예술학 박사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 예술감독

임송박사1.jpg
임 송 박사 자료제공 -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연주의 기본 원리에 관한 책'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집필한 '바이올린 연주법(1756년 7월 발간)'

모차르트가 태어난 1756년 당시의 레오폴트는 비록 궁정에 예속된 신분의 연주자이자 작곡자였지만 바이올린 교수법에 관한 책을 쓰고 음악가들을 가르치는 전문 교육자이기도 하였다.

 

그가 쓴 '바이올린 연주법'에는 활에 대한 사용법과 연주 자세를 포함한 바이올린의 연주법에만 국한되지 않고 스타일이나 성향 그리고 모든 음악과 관련된 미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여러 정보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 연주법 책은 오늘날 18세기의 음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문헌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1756년 7월에 출판된 초판은 1764년에 매진될 때까지 레오폴트를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1766년에는 네덜란드어 번역본이 출판되었고 1770년에는 프랑스어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현재도 '바이올린 연주법'은 계속 출판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되고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모차르트 연구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 1880~1952)의 지적대로 레오폴트는 천재아들이 없더라도 '바이올린 연주법'의 저자로서 음악사에 당당하게 존재하는 인물이며 교육자이자 작곡자로서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분노

모차르트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낸 아버지 레오폴트의 절망과 분노에는 다양한 심리적 양태가 엮여 있었다. 레오폴트에게 모차르트는 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일찍이 천재성을 발견하여 가르친 제자이기도 했다.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그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중단하고 어려운 결단과 계획을 세웠다. 생계를 위해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를 포기할 수는 없었고 눈총을 받으면서도 모차르트의 연주여행을 위해 자주 휴가를 얻어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6살인 모차르트와 10살 된 딸을 데리고 뮌헨과 빈을 다녀오는 모험을 감행했다. 두 번의 여행까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의 성공은 자신의 사업적 노력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나이가 들면 그의 뛰어난 능력도 유럽 귀족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좋은 조건의 대궁정에서 자리를 얻어야만 했었다. 그것이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잘츠부르크를 떠나지 못하더라도 아내와 아들만이라도 출발시킬 수밖에 없었던 파리 여행의 목적이었다. 1778년 2월 4일에 쓴 아버지의 편지는 그래서 더욱 애절하고 단호했으며, 분노와 절망감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청년으로 성장한 모차르트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에 눈뜨는 일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스스로 옳다고 판단한 결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랑하는 사람의 평화로운 가정에 보탬이 되도록 알로이지아의 음악적 성공을 도와주고 싶은 젊은 청년 모차르트의 생각도 또한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공교육과 또래들과의 집단적 성장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모차르트로서는 이러한 행동들이 오히려 다행스럽고 긍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재아들의 안정적 자리를 구하는 일에 조급했던 아버지 레오폴트에게는 이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모차르트의 가정교육

초기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모차르트 전가족의 연주여행은 사회학적 시각에서 볼 때 매우 특이한 상황이었다.

 

고향 잘츠부르크에서의 단순하고 협소한 생활환경은 연주여행을 통해 단숨에 상층사회로 이동하였다. 1762년 1월 잘츠부르크를 출발한 모차르트 가족은 바이에른의 선제후(選帝侯)인 막시밀리안 3세(1727~1777) 앞에서 연주하였고, 10월에는 빈의 쇤부른 궁에서 황제 프란츠1세와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 부부 앞에서 두 차례 연주하며 세상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딸에게 가르치던 피아노(당시는 하프시코드)를 모차르트가 세 살 때부터 함께 가르친 레오폴트는 아들 모차르트가 어머니와 함께 파리 연주여행을 시작하기까지 20년 동안 한시도 아들과 떨어진 적이 없이 함께 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였다.

 

모차르트는 학교도 다니지 않고 항상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그의 보호와 감독아래 모든 사회적 교육과 음악적 훈련 그리고 교양과 언어까지도 아버지의 지도와 도움으로 학습하였다.

 

교사로서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실수를 매번 단호하게 고쳐 나갔다. 전문가로서의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이 완벽과 최상을 이루도록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러한 훈련으로 모차르트는 뛰어난 재능을 최고의 기량으로 높여가는 음악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음악적 업적은 그의 인생에 적지 않은 대가를 동반했다. 동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특이하고 별난 성격이라는 지적을 받게 된 이면에는 이러한 교육의 결과가 원인이 되기도 했다.

 

레오폴트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지탱해 나갔다. 또한 본인이 이루지 못한 사회적 신분의 상승도 아들을 통해 구할 수 있으리라 일말이나마 희망했다고 볼 수 있다. 모차르트를 통해 가족과 자신에게 도래한 기회를 알아차린 레오폴트는 모든 삶의 방향을 멈추거나 수정하고 애초의 1차 유럽 연주여행을 출발했던 것이다.

 

일괄편집_임송박사2.jpg
임 송 박사 자료제공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레오폴트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선택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받아들이고 반성하였다. 그는 항상 솔직하고 느낌을 그대로 표현했다. “아빠가 저에게 틀렸다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저를 설득한다면 저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만하임을 떠나기로 다짐한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 아버지에게

  만하임에서, 1778년 3월 7일

 

...........

 

아버지는 정말 무슨 일에나 정확하십니다. 하느님 바로 다음이 아빠입니다(이탈리아어로는 교황을 가리켜 파파라고 한다. 그것과 아버지를 아울러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건 제가 아이였을 무렵 제 모토, 그러니까 공리(公理)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공부를 하면, 한 만큼은 할 수 있다”고 말하시는 건 당연합니다. 아무튼 매우 애써주셨다는 것과 몇 번씩이나 오고 가셨다는 건 제쳐놓고, 후회하실 일은 전혀 없습니다.

 

사실 베버 양(알로이지아)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저는 그저 아버지께서, 제가 최근 말씀드린 저의 새로운 아리아를 그 사람이 부르는 걸 들어주셨으면 했을 뿐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 노래가 그 사람에게 딱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아버지처럼, 포르타멘토로 노래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

 

그런데 실토합니다만, 지난 편지에서, 아버지가 ‘후줄근한 차림새로 돌아다녀야 한다’고 쓰신 부분을 읽었을 때, 저는 매우 놀랐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빠! 그건 분명 제 탓이 아닙니다. 그 점은 알고 계시지요. 우리는 여기서, 가능한 한 절약하고 있습니다.

 

식사와 방, 장작과 조명이 이곳에서는 무료입니다. 원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의복에 관해서는, 물론 아시는 바와 같이 타향에서는 허름한 복장으로 나돌아 다닐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다소간은 차림새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저는 파리 행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독일의 왕후는 모두 구두쇠니까요. 저는 열심히 일해서, 한시바삐 아버지를 현재의 슬픈 상황에서 빠져나오시도록 하는 일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저희 여행에 관한 일인데, 내주 오늘 그러니까 14일에 이곳을 떠납니다. 마차를 파는 일은 좀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네요. 

 

파리로 떠나기 전에 알로이지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던 모차르트는 베버의 집을 방문했다. 서가에서 책을 살피다가 당시 유럽 전역에 관심과 인기를 끌던 '돈 후안'이라는 희곡을 보게 되었다. 이 희곡은 나중에 오페라 '돈 조반니'로 재탄생 하였다. 만하임을 떠날 때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로 부터 추억의 상징으로 장식이 달린 장갑을 받았다. 아버지 프리돌린 베버는 독일어로 번역된 몰리에르의 희곡을 선물했다. 모차르트와 베버의 가족들은 눈물로 이별을 아쉬워했다.

 

- 아버지에게

만하임에서, 1778년 3월 11일

 

3월 5일자 마지막 편지, 잘 받아봤습니다. 그 편지에서, 우리의 친절하고 최고인 친구 그림 남작이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번 토요일, 14일에 반드시 이곳을 떠납니다.

 

……

 

지금 막, 고용 마부하고 계약했습니다. 그 마부는 11루이도르로, 우리를 우리 마차(모차르트 모자가 잘츠부르크에서 만하임까지 타고 온 마차)로 파리에 데려다줍니다. 마차는 그 마부가 우리에게서 40플로린에 사줬습니다.

 

……

 

모차르트는 파리로 가지만 건강이 나빠진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잘츠부르크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몇 곡의 작곡으로 여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입이 예상보다 적어서 어머니의 귀국비용이 마련되지 않았다. 모자는 일단 함께 파리로 간 다음 거기서 마차를 팔아 비용을 충당하기로 하고 마부와 소유권 이전을 계약했다. 1778년 3월14일 모차르트와 어머니는 만하임을 출발하여 메츠와 클레르몽을 거쳐 9일 후에 파리에 도착했다.<다음으로 이어짐>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leaderjj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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