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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손암 정약전⑱ '유클리드의 원론' 과 ‘기하원본 (幾何原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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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손암 정약전⑱ '유클리드의 원론' 과 ‘기하원본 (幾何原本)’

임 송 문화예술학 박사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 예술감독

임 송 박사1.jpg
임 송 박사 자료제공 - 알렉산드리아의 유클리드 (Euclid of Alexandria B.C. 330 ~ B.C. 275)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윤길 기자= 손암 정약전이 심취했던 기하원본 (幾何原本)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과학자로 인정받는 손암 정약전1758~1816)은 남인 실학파의 중심인물로서, 성호 (星湖) 이익 (李瀷, 1681~1763) 이 형성한 성호학파의 거유였던 녹암 (鹿庵) 권철신 (權哲身, 1736~1801) 을 스승으로 모시고 조선에서 천주교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다양한 서양학문을 접하고 있었다. 손암은 특히 수학에 큰 관심을 보여 ‘기하원본 (幾何原本)’ 을 이해하고 깊이 연구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茶山詩文集) 제15권에 수록된 ‘선중씨(先仲氏)의 묘지명 (墓誌銘)’ 에 보면 “돌아가신 둘째 형님 (손암 정약전) 께서는 계묘년 가을에 경의 (經義) 로 진사가 되었으나 대과 (大科) 에 뜻을 두지 않고, 일찍이 학식과 덕행이 높았던 이벽 (李檗, 1754~1785)을 좇아 함께 지내며 역수 (曆數) 의 설을 듣고는 기하 (幾何) 의 근본을 연구하고 심오한 이치를 분석하였다”고 하는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손암은 1783년 (정조7년) 에 생원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기하학과 서학에 깊이 빠져서 과거에는 관심이 없다가 과거를 통하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는 경술년 여름, 나중에 순조가 되는 왕자의 탄생으로 특별시 행해진 증광별시 (增廣別試) 에 대책 (大策) 을 지어 응시하여 1등으로 급제하였다.

 

기하원본은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Matteo Ricci, 利瑪竇, 1522∼1610) 가 번역한 ‘유클리드의 원론’을 중국 명나라 말기의 학자 서광계 (徐光啓, 1562~1633) 가 편찬한 책이다. 기하원본의 초판은 1607년(만력 35) 북경에서 6권으로 간행되었다. 번역 대본은 마테오 리치가 로마에서 수학할 때의 스승이요 저명한 수학자였던 클라비우스 (Clavius, 1537∼1612) 가 편찬한 라틴어본 (本) 유클리드 기하학이었다.

 

유클리드의 원론

유클리드의 원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2300여 년 전에 그리이스의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수학자 유클리드 (Euclid, B.C. 330 ~ B.C. 275) 가 정리한 책으로 그 이전부터 여러 수학자들에 의해 전해져 왔으나 모든 수학에 대한 원론과 기하학적 사실들을 알렉산드리아의 유클리드가 체계적으로 가장 잘 정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하학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책이 되어 유클리드의 원론으로 부르고 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인류가 오랜 세월동안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는 수학의 초석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배우는 수학에 있어서 지금까지도 모든 내용이 초·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다루는 수 (數) 와 도형 영역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천년이 넘도록 손으로 옮겨 적어서 읽어 오다가 1482년에 이르러서야 인쇄술을 이용한 책의 형태로 발행하게 되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1482년에 출판된 이후에도 1000번 이상을 찍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모두 13권으로 저술하였는데, 마테오 리치는 그중 핵심 부분 6권을 번역하여 ‘기하원본’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후로 기하학 (幾何學) 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 책은 1607년 ‘기하원본’이라는 이름으로 초간된 이래 여러 차례 중간되면서 중국 기하학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629년에 이지조 (李之藻, 1565~1630) 가 편찬한 ‘천학초함 (天學初函)’ 과 1787년(건륭 46) 에 완성된 ‘사고전서 (四庫全書)’ 에도 수록되었다.

 

임 송 박사2.jpg
임 송 박사 자료제공 -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22∼1610)와 서광계(徐光啓, 1562~1633)

 

청나라의 강희제 (姜熙帝, 1654~1722) 는 이를 만주어로 번역하도록 하여 1865년 (동치4년) 에는 증국번 (曾國藩, 1811~1872) 이 이를 남경에서 간행하였다.

 

책의 내용은 제1권 삼각형, 제2권 선, 제3권 원, 제4권 원의 내외형 (內外形제), 제5권 비례, 제6권 선면 (線面) 의 비례 등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마다 먼저 계설 (界說, 즉 定理) 과 공론 (公論, 즉 公理) 를 제시한 뒤 설제 (設題, 해설) 에서 그 내용을 풀이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전체의 계설은 80칙, 공론은 19론, 설계는 182제이다.

 

다음은 다산의 여유당전서 (與猶堂全書) 에 실려 있는 논설 (論說) “도량형의 (度量衡議)”에 대하여 손암이 1812년경에 다산에게 보낸 논평 내용 중 일부이다.

 

- 자네의 ‘도량형의’를 보니, 16냥 (兩) 으로 1근 (斤) 을 만든 것은 주역의 사상 (四象) 과 팔괘(八卦) 의 제곱하는 법에서 나왔으나 아무래도 타당치 않은 것 같다. 요컨대 상고시대 (上古時代) 의 법도 아니요, 그 말의 됨됨이가 점술가의 괘를 구하는 법에 불과하니 어찌 수학 (數學) 의 종주로 받들겠는가. 주례의 주를 살펴보니 구장산술의 계산법과 주비산경 (周髀算經, 고대 중국의 천문수학서), 직각삼각형의 법은 세상에서 기하학자들이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스스로 수학이라고 하는 것은 ‘기하원본 (幾何原本)’ 의 기하원본이다. 수학에는 두 가지 법이 있으니 하나는 십진법이요 또 하나는 늘 일배를 더하는 것이다. 16냥으로 1근을 만든 것은 다만 1배를 더하는 법이라면 맞겠으나 사상과 팔괘에 근본하여 일컫는다면 허황한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

 

임 송 박사 3.jpg
임 송 박사 자료제공 - 기하원본

 

기하원본은 성호 이익과 손암 정약전이 일찍부터 이를 접하고 그 내용에 대해 연구와 토론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북학파의 홍대용 (洪大容 1731~1783)이나 당시의 실학자들의 행적이나 저술에서로 볼 때 이 책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은 되지만 깊이 있는 연구나 이해에 대한 흔적은 나온 바가 없다. 1784년 이후에는 이승훈 (李承薰) 이 북경 선교사들로부터 다시 이를 얻어 와 널리 전해졌다. 현재 3권 2책의 필사본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다음으로 이어짐>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복지신문 정윤길 기자 yk82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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