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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옥정호 난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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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옥정호 난국정

김민영 전 정읍산림조합장
전 정읍구절초축제추진위원장
대통령 표창 (2012)

김민영 전 조합장 사진제공 - 난국정.jpg
김민영 전 산림조합장 사진제공 - 난국정

 

[전문가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6대째 수침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김해 김씨 우리 집 고조부께서는 머리가 좋고 성실하셨다. 우리 집은 일꾼 식솔들이 여럿 있는 산중 부잣집이었다.

 

고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일꾼들을 동원해 뒷산에서 베어낸 나무로 장작 패서 구절재 너머 군산까지 소구르마에 싣고 가서 팔았다. 산이 보잘것 없던 항구는 사람이 많았고 나무가 귀했다. 일본인이 많았기에 장작은 언제나 가까운 정읍 나무전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비싼 값에 잘 팔렸다. 나무 장사로 돈이 모이자 고조부는 태인 거산역에 센베 과자공장을 열었다. 토지가 넓은 지역이어서 과자도 잘 팔렸다. 장작 파는 것보다 덜 힘들고 돈을 많이 버셨다. 사업 수완이 뛰어난 고조부 덕분에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고는 산내 소재지에서 수침동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 당시에는 귀했던 자전거를 타고 태인까지 다니셨다. 산내골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1등 호세 집안이 우리 집이었다.

 

일제강점기 사람살이는 팍팍했다. 강 건너 마을 너듸도 사승이라는 한자어로 이름이 바뀌었다. 집집마다 콩을 한 알씩만 모아도 콩이 넉 되가 나오는 큰 마을이어서 사승이라고 훗날 붙여진 이름이다. 너듸는 그냥 넓은 디, 넓은 들, 장재들이라고도 했다. 그것을 한자로 넉 되, 즉 사승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 같다. 들이 넓으니 마을도 컸다. 강물 주위 너른 들판엔 벼가 자라고 큰 마을이 생기고 장이 열렸다. 너듸장은 임실 강진장과 산외 용머리장 가운데 큰 장이었다. 순창 쌍치나 임실 태인 사람들도 산 넘어 물 건너 너듸장에 몰려왔다는 말은 지금은 전설처럼 들린다.

 

김민영 전 조합장 사진제공 - 옥정호 난국정 비문.jpg
김민영 전 산림조합장 사진제공 - 옥정호 난국정 비문

 

일제강점기 전주, 군산, 김제, 고창, 정읍 등 도내 각처의 유림 80명이 뜻을 모아 강가에 난국정을 세웠다. 고조부도 큰돈을 내셨다. 난국정(蘭菊亭)은 춘난추국(春蘭秋菊) 즉, 봄철의 난과 가을철 국화의 뜻을 기리는 정자라는 뜻에서 난과 국화처럼 살자고 결의했다고 전해진다. 사방으로 여러 산이 연꽃 봉우리처럼 둘러쳐 있고, 잔잔한 강물은 바람 따라 은빛 물결을 치니 신선이 노닐 만한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시인 묵객들이 멀리서 찾아왔다. 지금도 난국정은 옥정호를 찾는 이들에 사랑받는다.

 

갓에 흰 도포를 입고 난초처럼 국화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고 지조 있는 삶을 결의했던 분들과 함께 고조부의 이름이 지금도 비석에 새겨져 있다. 원래 난국정 자리는 옥정호 속에 깊숙이 잠겼다. 큰비가 오지 않는 한 강물은 산과 산 사이를 활弓처럼 새乙처럼 얕고 느릿느릿 흘렀다.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정자를 지었다. 그러나 댐이 생기고 물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정자를 뜯어 위로 옮겨 짓고 비석도 이사를 했다.


해방 후 1965년 옥정호는 농업용수와 칠보수력발전소에 전기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상수원이 되었다. 따라서 다목적댐은 더 높아지고 난국정 또한 더 높은 층으로 산 위로 옮겨졌다. 극심한 가뭄으로 옥정호 바닥이 드러났던 그해, 마을 사람들은 호수 바닥 구들장처럼 깔린 검은 돌들을 가리키며 저기가 난국정 기둥이 서 있던 자리라고 말했다. 100여 년 전 난국정을 지었던 분들은 정자의 지붕보다 수십 배 높이 물이 차오르리라는 생각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민영 전 조합장 사진제공 - 난국정을 세우신 고조부, 4대 현손 아버지께서 보존회장을 맡아 아직도 그계를 이어오고있다..jpg
김민영 전 산림조합장 사진제공 - 난국정을 세우신 고조부, 4대 현손 아버지께서 보존회장을 맡아 아직도 그계를 이어오고있다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위치한 칠보수력발전소는 옥정호 취수구에서 약 6.2km 압력수로를 이용, 도수하여 발전을 한 후 물을 동진강으로 방류함으로써 약 4만 정보의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전라북도 서남지역 광역상수도 수원을 공급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댐이 만들어지기 전 너듸장터에서 건너오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댐이 생기고 왜정 때는 나룻배를 30원씩을 받고 건네주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옥정호는 이미 바다처럼 넓은 호수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산내 저수지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에는 너듸장터를 오가는 나룻배와 물고기를 잡는 고깃배가 호수 위로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동네 사람들은 호수에서 건져올린 물고기에 시래기를 넣고 매운탕을 자주 끓여 먹었다. 어느 해인가 몹시 가물어 강물의 바닥이 드러났을 때 너듸장터로 가는 징검다리와 옛 마을의 흔적이 보였다. 난초와 국화가 사시절을 오래 푸르다가 매서운 서리에도 꽃이 아름답고 향기를 내뿜는 것은 절개를 지키고 지조의 의리를 변치 아니함이다.

 

아버지는 난국정에 서서 이 정자를 고조부께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대대로 4대에 이르도록 지금도 그 계를 이어온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기자 qnowstar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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