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전문가 컬럼]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 물고기②

입력 2021.12.07 17:17
수정 2021.12.10 06:30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박동희 박사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원
    건축학 박사 (앙코르유적 복원연구)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크메르인과 민물고기의 깊은 관계는 고대 앙코르 제국이 남긴 문화유산에서도 볼 수 있다. 바이욘 사원, 반띠아이 츠마 사원의 회랑에 그려진 수상전의 장면이나, 앙코르 왓의 우유바다 휘젓기 장면에는 특히 많은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다. 조각을 살펴보면 붕어류, 잉어류, 장어류, 심지어 악어에 이르기까지 각 어족자원의 특징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상세한 묘사가 가능하였던 것은 당시의 조각가들이 물고기들을 자주 보고 먹어 친숙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박동희 박사1.jpg
    박동희 박사 사진제공 - (좌) 반띠아이 츠마 사원에 그려진 해상전, (우) 앙코르 시대의 물고기 모양 펜던트 © 프놈팬 박물관

     

    위의 사진은 프놈팬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12~13세기에 제작된 물고기 모양 목걸이다. 똑같은 형태의 물고기가 바이욘 사원의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이 물고기는 현지어로 ‘뜨러이 꼴레앙’이라고 불리는 잉어과 물고기로 추측한다. 뜨러이 꼴레앙은 톤레삽에서 잡히는 물고기 중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물고기 중 하나로,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길이 1.8m, 무게 150kg에 달하는 개체가 잡혔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3m, 300kg까지 성장이 가능하다하니, 과거에는 훨씬 큰 개체가 잡히기도 하였을 것이다. 고대 앙코르 왕국의 어부가 기록적으로 큰 물고기를 잡았을 경우를 상상해 보자. 그 어부의 기쁨이 눈앞에 선하다. 아마도 힌두 신화에서 회자되는 한 이야기와 같이 당시의 왕에게 진상하지 않았을까?

     

    2.jpg
    박동희 박사 사진제공 - 톤레삽에서 잡힌 뜨러이 꼴레앙 © www.morningangkor.com

     

    거대한 물고기를 왕에게 진상하는 장면이 바이욘 사원의 벽화에 그려져 있다. 아래의 벽화를 살펴보면 장면의 오른쪽 위에 왕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고, 왼쪽 아래에는 물고기를 진상하는 어부가 그려져 있다. 장면의 가운데에는 물고기가 있는데, 배 쪽을 살펴보면 작은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 사람은 사랑의 신 ‘카마(Kama)’로 이 장면은 ‘카마의 환생’이라는 힌두 신화를 그린 장면이다.

     

    박동희 박사 3.jpg
    박동희 박사 사진제공 - 바이욘 사원에 조각된 프라디움나

     

    ‘카마의 환생’ 신화에 따르면, 왕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예언한 아기 프라디움나(카마의 환생)를 바다에 던져 버린다. 하지만 거대한 물고기가 아기를 삼켜 버렸고, 이 물고기를 잡은 어부는 다시 그 왕에게 진상한다. 카마의 부인이었던 요리사가 물고기를 다루었기에 프라디움나는 구명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물고기’는 죽음의 공간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게 해준 ‘구원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가 구원자로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바이욘 사원의 다른 벽화에 그려져 있다. 아래의 사진은 바이욘 안쪽회랑의 동쪽 벽면에 그려진 부조벽화이다. 일곱층으로 구성된 산을 거대한 물고기가 둘러싸고 있다. 가운데에는 비슈누의 상징인 가루다가 그려져 있다. 산 속에는 수도승들과 동물들이 보인다. 이는 힌두교 신화인 ‘마쯔야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박동희 박사4.jpg
    박동희 박사 사진제공 - (좌) 바이욘 사원에 그려진 마쯔야 이야기, (우) 동일 장면 드로잉(JASA 보고서 참조) 

     

    마쯔야 이야기

    옛날 ‘마누’라는 사람이 개울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작은 물고기를 잡았다. 신기하게도 그 물고기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마누는 물고기를 작은 물병에 집어 넣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물고기는 아주 빨리 자라났다. 처음에 넣어둔 병은 곧 물고기가 살기에 너무 좁아졌다. 물고기가 마누에게 넓은 곳에 풀어주기를 요청했다. 그러자 마누는 집 앞 연못에 물고기를 놓아주었다. 시간이 흘러 물고기는 더 커졌고, 물고기를 연못에서 강으로, 그리고 강에서 바다로 옮겨주었다.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 줄 때, 물고기는 자신이 비슈누의 화신임을 밝혔다. 그리고 조만간 큰 홍수가 발생할 것이고,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집어 삼킬 것이니 큰 배를 만들도록 조언하였다. 마누는 이 말을 따라 배를 만들었다. 배가 완성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도처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마누는 배에 일곱 리시(수도승)와 함께 배로 피신하였고, 물고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풀어 주었던 물고기가 다시 나타났다. 물고기는 배와 자신의 뿔을 밧줄로 연결하도록 하였고, 배를 가장 높은 곳인 히말라야로 몰기 시작하였다. 히말라야로 가는 도중 마누는 마쯔야로부터 베다와 프라나 등을 비롯하여 세상의 섭리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얼마 뒤, 홍수가 가라앉았고 마누를 시작으로 지구의 생명들이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마쯔야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낯익은 이야기일 것이다. 줄거리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거의 동일하다. 대홍수와 관련된 이야기는 인도 뿐 아니라 여러 문화권에서 유사한 이야기가 확인된다. 마쯔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특색은 비슈누 신이 물고기의 모습으로 나타난 점이다. 홍수가 세상을 집어 삼키는 와중에,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구원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인도에서 앙코르로 전달된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의 전달은 지역사회의 구미에 맞게 선별적으로 전달되거나 각색되기 마련이다. 앞의 두 이야기를 통해, 고대 앙코르의 사람들은 ‘구원자’로서의 물고기에 대한 관념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